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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토착적 회로들: 나바호족 여성과 초기 전자제품 제조의 인종화 (리사 나카무라)

아마도 독자 2024. 10. 6. 11:09
-이 글은 American Quarterly 2014년 12월호에 실린 Lisa Nakamura의 글 「 Indigenous Circuits: Navajo Women and the Racialization of Early Electronic Manufacture 」를 번역한 것이다. 

-글 극초반부에 나오는 해러웨이의 문장은 한국어로 번역된 『해러웨이 선언문: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책세상)의 번역을 그대로 따온 것임을 알려드린다. (더불어, 해러웨이를 읽을 수 있게 해주신 황희선 역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각주는 PC를 통해 봐야 오류 없이 볼 수 있다.

-썸네일의 이미지는 원문에는 실리지 않은 것으로, 역자 본인이 임의로 넣은 이미지이다.

-오역에 대한 코멘트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아주 중요한 사이버페미니즘 에세이 사이보그 선언문 A Cyborg Manifesto의 뒤에는 무언가를 환기시키는 부제가 달려 있다. “통합 회로 속의 여성을 위한 공통 언어에 대한 아이러니한 꿈.” 해러웨이가 쓰기를, “‘동양여성의 민첩하고 가느다란 손가락, 빅토리아 시대 앵글로색슨 소녀를 매혹한 인형의 집, 그러니까 여성이면 작은 것에 집착해야 마땅하다고 강요받아왔던 역사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매우 새로운 차원에 접어든다. 이 새로운 차원을 설명해줄 사이보그 앨리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앨리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에서 칩을 만들거나 샌타 리타 감옥에서 나선의 춤을 추는 비자연적 사이보그 여성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연합을 구성해 효과적인 대항 전략을 알려줄 것이다.”[각주:1] 이 문단에서 해러웨이는 아이러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이 아이러니란, 우리들 중 누군가는 나머지 사람들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을 통해 (실제로는 자유롭다거나 역량이 강화된 것이 아니더라도) 그러하게 느낄 수 있도록 비가시적으로 노동해야만 한다는 아이러니다. 실제로 기술과학은 통합 회로인데, 이는 노동자와 사용자를 분리하고 연결하며, (외주화되든 내부에서 조달되든 간에) 유색인종 여성들의 유연 노동은 모든 젠더가 값싼 컴퓨터로부터 이익을 얻는 대조적인 상황을 가능케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가능케 할 것이다.[각주:2]

 교차성 페미니즘을 위한 디지털 기술의 가능성과 기회에 대한 해러웨이의 비판적 관점은 이 에세이에서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디지털 기술의 이점만큼이나 그것의 비용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사이보그 선언문은 종종 기술에 의해 강력해진, 새롭게 확장되고 증강된 사이보그 신체에 대한 찬사로 독해된다. 이는 글의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인용구 일부, 그러니까 나는 여신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사이보그가 되겠다같은 인용구가 기술 이용을 통한 일종의 초월성, 즉 디지털적으로 정체화한 사람들에게 소구하는 초월성을 암시한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결과다.

 [하지만-역자 추가]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단지 가상성만이 아니라 물질성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적으로 강조한 것, 컴퓨터 하드웨어 자체만큼이나 신체의 젠더화와 인종화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적으로 강조한 것은 21세기의 미디어 고고학과 플랫폼 연구의 핵심에 있는 많은 관심사를 선취했다. 디지털 노동의 장소로서의 인터넷에 주목함으로써 우리를 신체와 착취의 물질적 영역에 데려다 놓는 티찌아나 테라노바Tiziana Terranova, 디지털 문화 내부에서 종종 노동자에 대한 보상 없이도 노동이 상품화되고 추출되는 방식으로 이런 탐구를 확장시킨다.[각주:3] 해러웨이에게, 콘텐츠가 창조될 수 있도록 하는 물질적 회로와 여타 디지털 부품들을 만드는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는 모두 기술문화의 회로내부에 통합되어 있다. 그들의 신체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인간의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디지털 플랫폼의 일부가 된다. 디지털 미디어를 진정으로 바라본다는 것, 그러니까 디지털 미디어의 이미지를 바라볼 뿐 아니라 그것으로 들어가서, 즉 기계적이면서 인간적인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의 역사로 들어가서 본다는 것은 오늘날 디지털 노동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효과적인 대항 전략을 형성하기 위해 디지털 산업 내의 유색인종 여성 노동의 지도를 받으라는 해러웨이의 지령을 우리는 어떻게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유색인종 여성 페미니즘의 이론적 뼈대는 디지털 미디어 연구에 제공해 주는 바가 많은데, 이는 특히 미디어 고고학이 학계에 가져다 준 것, 즉 컴퓨팅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에 대한 강조라는 관점에서 그러하다. 미디어 고고학자 볼프강 에른스트Wolfgang Ernst는 미디어 인공물의 역사와 생산 형식을 통해 그것의 특정성을 연구하는 데 있어 설득력 있는 사례를 제시한다.[각주:4] 우리가 디지털 디바이스의 역사를 바라볼 때, 디지털 미디어 디바이스 생산의 짐이 그것을 만드는 유색인종 여성에게 불균등하게 지워진다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콩고에 희망을Raise Hope for Congo같은 윤리적 하드웨어Ethical hardware조직, 갈등-없는 휴대폰 및 랩톱 캠페인, 몰레인더스트리아Molleindustria폰 게임Phone Game같은 게임 텍스트들은 컴퓨팅과 이동 통신의 인간적 비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는 것에 우리를 초대한다.

 디지털 자원으로서의 민첩한 손가락에 대한 참조는 유색인종 여성들이 이 시기의 전자제품 산업 내에서 어떻게 이해되었고 또 어떻게 적극적으로 노동력으로 모집되었는지를 다루는 많은 설명들에서 등장한다. 제퍼슨 코위Jefferson Cowie가 쓰듯, “민첩한 손가락이라는 어구는 마킬라도라에서 RCA와 페어차일드를 포함한 여타 전자제품 회사를 위해 일했던 라틴 여성들에게 적용되었다. 카렌 호스펠트Karen Hossfeld에 따르면, 80년대 실리콘 밸리에서 전자제품 조립은 단지 여성의 노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색인종 여성의 노동이 되었다.[각주:5]

 이 글은 전자제품 제조나 디지털 혁명과 거의 결부되지 않은 유색인종 여성 집단인 나바호족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실리콘밸리의 형성에 중요했던 시기의 가장 영향력 있고 선구적이었던 전자제품 회사인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의 역사와 산업적 전략을 기록해 놓은 시각적 자료의 아카이브는 비록 나바호족 여성들 그 자신의 목소리로는 아니지만, 시각적이고 담론적인 수단을 통해 이들의 참여를 문서로 뒷받침해주고 있다.[각주:6] 사보(社報) 같은 페어차일드의 내부 문서, 브로셔 같은 공개 문서, 그리고 인디언 사무국Bureau of Indian Affairs의 보도 자료와 <비즈니스 위크 Business Week> 같은 잡지의 언론 보도는 나바호족 여성 노동자를 이상적인 디지털 이전의 디지털 노동자로서 묘사하는데, 이런 묘사에서 이들은 기질, 문화, 젠더의 관점에서 특출 나게 적합한 것으로 여겨진다.[각주:7]

 이 자료들에 대한 나의 독해는 페어차일드가 전자제품과 그 이후의 디지털 디바이스 생산 산업에 있어 나바호족 인구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어떻게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논의를 생산했는지를 보여준다. 코위가 RCA에서 일하는 젊은 멕시코 여성들에 대해 썼듯, “젊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선호를 다루는 경영진의 표준적인 설명은 여성의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특징이 그들을 유별나게 전기조립 노동의 복잡함에 적합한 것으로 만든다는 생각에 전형적으로 의존했다.”[각주:8] 이와 유사하게, 나바호족이 살고 있던 뉴멕시코 쉽록Shiprock에 설립된 페어차일드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수백 명의 나바호족 여성들은 특정한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특징의 렌즈를 통해 이해되었는데, 여기에는 유순함, 손재주, 토착 재료를 사용한 공예품에 대한 정서적 투자 같은 특징들이 있었다. 전자조립 노동에 대한 나바호족 여성들의 독특한 소질을 묘사했던 시각적 수사는 인디언을 창조적인 문화 수공예가로 보는 기존의 관념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나바호족 여성의 노동이 어떻게 물질적 재화만큼이나 시각적이고 상징적인 자원으로서 이용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탐구는 인디언 보호구역의 최첨단 공장에서 회로를 생산하는 토착 여성들의 노동이 어떻게 정서적 노동으로, 혹은 사랑의 노동으로 이해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디지털 미디어의 이용에 있어 여성의 정서적 노동을 다룬 작업에서, 카일리 자렛Kylie Jarrett유형의 차원에서 산업 현장의 생산 경제와 차별화되는 사회적이고 재생산적인 노동을 지명하기 위해[각주:9] 여성의 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1969년의 페어차일드 브로셔는 인디언 여성 회로 제작자들을 단지 임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바호족 문화를 표현하는 재생산노동의 일부로서 회로를 생산하는 문화적 노동자로 찬양한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토착 노동자들에 대한 변칙적 서사

 나바호족 토지에 설립된 페어차일드 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디지털 산업의 역사에 편안하게 들어맞는 발전 서사의 일부는 아니다. 문서로 이루어진 페어차일드에 대한 역사는 풍부하고, 또 페어차일드는 실리콘 밸리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지만, 쉽록 공장은 이런 설명들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으며, 기껏해야 동남아시아로 생산을 외주화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에서 각주나 짧은 언급 또는 여담으로 등장한다.[각주:10] 페어차일드는 선구자로 여겨졌는데, 왜냐하면 페어차일드는 기꺼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새로운 제조 공정을 발명하고, 값싼 노동력을 찾기 위해 해외로 과감히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는 상업 인터넷과 다른 모든 것들을 야기했던 PC 혁명을 개시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각주:11] 행동이었다. 1960년대 국내의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로부터 노동력을 조달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에 일어났던 외주화 과정, 결국에는 아시아 지역으로 오프쇼어링을 하기까지의 페어차일드의 궤적은 다른 많은 전자제품 회사들이 따라갔던 길이었다.

 페어차일드는 아시아로 생산을 외주화한 최초의 칩 제조업체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외주화는 컴퓨팅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으로서, 전자제품에서 컴퓨팅 및 개인용 디지털 디바이스로 이어지는 산업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가능케 했던 혁신으로서 인식되었다. 하지만, 아시아를 향한 해외 외주화의 역사는 미국 국경의 내부에 존재했던 동시에 미국 국경을 가로질렀던 칩 제조 프로젝트와 병행하여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특히 나바호족의 토지와 멕시코에서 각각 진행되었다. 1964년에 브라세로 프로그램the Bracero Program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고, 1965년에는 국경 산업화 프로그램the Border Industrialization Program이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까지 페어차일드와 여타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이 프로그램에 따라 싱가포르, 홍콩, 서울에 있는 공장 외에도 멕시코에서 공장을 운영했다.

 가장 크고 중요했던 통합 회로 제조업체 두 곳인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내셔널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에서 각각 고위 경영진과 회장 및 CEO를 역임했던 찰리 스포크Charlie Sporck는 반도체 산업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곳과 관련해서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각주:12]을 알았다. 대다수의 제품은 군대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스포크는 계산기, 게임,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로 이어질 전자제품 디바이스를 위한 저 바깥의 광활한 소비자 시장을 돌파하기 위해서 페어차일드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 비용의 감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리콘 창세기: 반도체 기술의 구술사 Silicon Genesis: An Oral History of Semiconductor Technology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녹화된 인터뷰에서, 스포크는 값싼 노동력과 낮은 간접비용에 대한 요구가 어떻게 페어차일드로 하여금 홍콩에서 공장을 열도록 추동했는지 상기한다. 홍콩으로의 이동은 전자제품 제조가 동남아시아, 멕시코, 남부 캘리포니아의 이런저런 지역으로 외주화됐던 과정을 개척했다.

 하지만, 인터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페어차일드가 60년대에 어떻게 모든 회사들을 제치고 말도 안 되게 동남아시아를 향해 서두르기시작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스포크가 열중하고 있었을 때, 인터뷰어가 끼어들어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런데, 당신은 뉴멕시코 쉽록에, 인디언 보호구역에도 가지 않았습니까?” 스포크가 대답한다. “, 그건 그중 하나가 아닌데...” 인터뷰어는 계속 질문을 이어간다. “그건 거론하지 않으셨더군요.” 스포크가 대답한다. “거론하지 않았군요. 저희가 쉽록으로 갔던 게, 그 때가 아마 메인주 포틀랜드로 갔을 때 즈음이었을 거예요. 저희는 쉽록 몇 군데를 둘러봤고, 가능성 같은 걸 봤고, 그 아래에 자리를 잡았죠. 근데 일이 잘 풀리진 않았어요. 저희가 인디언 부족의 전체 사회 구조를 정말로 망쳐놓았죠. 당신도 알겠지만, 여성들은 돈을 벌었고 남성들은 그 돈으로 술을 마셨죠. 그건 실패였어요.”

 스포크는 쉽록의 공장을 실패라고 묘사했지만, 공장이 가동 중이던 시기만 해도 쉽록의 공장은 엄청난 성공으로 묘사되었다. 사실, 그 공장에 대한 자료들의 아카이브는 해당 공장이 부족의 사회 구조와 갈등을 일으키기보다는 발 맞춰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잘 굴러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의 내부 조달: 토착 영토로 이동한 페어차일드

 페어차일드는 1965년 뉴멕시코 쉽록에 있는 25,000 평방마일 규모의 나바호족 인디언 보호구역에 최첨단 반도체 조립 공장을 열었다. 공장은 33,000 평방피트 규모의 통합 회로 제조 시설에 55명의 사람을 고용했던 시범 사업에서 성장했으며, 이 공장에서 1965년에서 1975년 동안 수백 명의 나바호족 여성과 몇몇 남성이 회로 조립과 관련된 일을 했다. 고용된 나바호족의 정확한 숫자에 관한 추산치는 다양하지만, 1966년에 페어차일드는 현재 인디언 구역에 위치한 몇몇 전자제품 공장 중 가장 컸으며,”[각주:13]정점에 달했을 때, 그 공장은 1000명 이상의 나바호족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페어차일드는 뉴멕시코에서 가장 큰 산업 고용주이자 미국 내 인디언들의 가장 큰 고용주가 되었다.”[각주:14] 하루 24시간 내내 가동되었던 그 공장은 나바호 부족 위원회Navajo Tribal Council가 소유하고 있었으며 페어차일드가 월 6,000달러에 임대하고 있었다.[각주:15] 공장은 매우 낮은 실패율다른 공장들이 20번째 백분위수 비율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공장은 5퍼센트였다을 뽐냈으며, 공장의 혁신적인 관행으로 몇몇 상을 받기도 했다.

 역사가 콜린 오닐Colleen O’Neill이 쓴 바에 따르면, “공장이 문을 닫기 이전인 1974, 페어차일드는 922명의 나바호족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페어차일드는 인디언 사무국과 나바호국을 포함한 공공 부문 근로 다음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가장 큰 나바호족 노동력의 고용주 중 하나였다.”[각주:16] 대부분의 실리콘 밸리의 역사에서, 국내 제조는 1960년대에 아시아와 멕시코에서 최초의 대규모 공장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해외 제조에 자리를 내준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역자 추가] 나바호족 토지에서의 반도체 생산과 같은 내부조달 관행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외주화에 대한 관점을 확장한다면, 컴퓨팅의 물질적 문화를 바라보는 가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디언 보호구역은 미국 법에 최저 임금과 관련한 예외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이런 식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은 마치 외국과도 같았는데, 또 다른 방식으로 인디언다움을 둘러싼 미국의 신화는 인디언 노동자들에게 문화적으로 이국적이지만 익숙하기도 한 호감 가는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인디언 역사는 페어차일드 공장을 실패한 경제 발전의 한 사례로서, 혹은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American Indian Movement의 저항의 역사의 일부로서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공장을 디지털 문화나 역사로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페어차일드의 쉽록 공장은 단순한 국외자 그 이상이었다. 오히려, 회사는 전자제품의 값싼 국내 제조, 외주화가 아닌 내부조달을 위한 새롭고도 혁신적인 모델로서 그 공장을 표상했다. 페어차일드의 홍보 자료와 언론 기사에서, 나바호족 노동자는 언제나 백인 노동자와 다르게 표상되었으며, 칩을 정확하고, 빠르고, 별 탈 없이 생산하도록 증강되거나 재활될 수 있는 타고난 인종적/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상되었다. 페어차일드 쉽록 공장과 그 노동자들에 대한 홍보 자료, 브로셔, 연간 보고서, 보도 기사의 시각적 아카이브는 전자제품 조립 노동이 어떻게 젠더화되고 특정한 인종화된 자질을 가진 것으로 식별되는지를 드러내준다. 공장의 눈에 띄는 초기의 성공과 1975년 폐쇄를 맞이하게 될 때까지를 그려낸 당시의 문서를 분석함으로써, 젠더, 인종, 그리고 결국에는 나바호족 여성을 대체하게 되는 아시안 여성 노동자를 묘사하기 위해 재빨리 전유되는 특정한 노동 스타일을 둘러싼 강력하면서도 오래 가는 주장과 믿음들이 드러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간 반도체 제조업체는 어떻게 그리고 왜 최첨단 전자제품 조립 공장을 1965년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설립하게 되었을까? 1969년 페어차일드의 보도 자료가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그 공장은 나바호족 사람들, 미국 인디언 사무국, 그리고 페어차일드의 공동의 노력의 정점이었다. 값싸고 풍부한 노동자, 세금 혜택이 전자제품 회사를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나바호족 지도부가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 나바호국의 부족장을 맡았으면서 자칭 최초의 근대적인나바호족 리더였던 레이먼드 나카이Raymond Nakai는 페어차일드를 쉽록으로 끌어오는 데에 있어 중요했다. 그는 나바호족을 근대적인인디언 부족으로 변형시킬 필요성에 대해 열렬히 말했으며, 사람의 손톱보다도 크지 않으면서 미래성의 강력한 상징인 칩을 만드는 일을 하는 데 나바호족 구성원을 투입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이 있겠느냐고도 물었다. 이런 노동 형식의 부조화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원시적이라고 생각되어 왔던 여성이, 아직까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가장 발전된 디바이스를, 그리고 위성이 어디로 향할지를 알려줄 수 있는 작은 물질들을 만든다는 부조화는 부족 자체에서 해소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새롭게 건설된 쉽록 공장에 바치는 연설에서, 나카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 이 장엄한 공장의 헌정사에서 우리는 눈부신 장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는 나바호족 인디언 보호구역의 진정한, 그리고 앞선 산업화를 의미합니다. 이는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 향하는 나바호국의 발전을 나타냅니다.”[각주:17] 전자제품 제조 산업의 노동을 통해 나바호족을 근대적으로 쇄신하려는 이런 노력은, 필립 들로리아Philip Deloria가 말한 바 있듯[각주:18] 인디언을 발전하지 못하는 인종적 무능으로 고통 받는존재로 보는 관념에 맞서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산업적인나바호족이라는 새로운 관념은 복잡한 정체성을 생산했는데, 이 정체성의 형성은 부족이 근대적일 수 있음을, 심지어는 초근대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의존했으나, 이런 형성은 정확히 독특한 인디언-되기의 결과였다. 공예에 대한 정성스러운 주의력과 같이 인디언의 것으로 식별된 특성과 관행들, 그리고 금속 가공물과 직물의 친연성은 나바호족을 기술적 국면의 최첨단에 위치시키기 위해 배치되었다. 이들이 전통적이고 전근대적인 공예가적 수작업에 있어 인종화된 문화적 창조 기술들의 일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말이다.

 쉽록 공장의 건설은 인디언 문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Indian Affairs1961년 제기한 권고사항과 매우 일치했다. 이 권고사항은 인디언 보호구역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역량 프로그램의 실마리의 일부인 경공업을 끌어들여야만 한다고 권고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인디언의 경제적 자족을 증진시키고 결국에는 미국 원주민에게로 향하는 연방 정부의 모든 서비스를 제거할[각주:19] 터였다. 피터 이버슨Peter Iverson이 쓰듯, “나바호족은 값싼 토지 임대, 선호할 만한 건설 협약, 그리고 훈련 가능한 노동력을 미끼로 다른 대규모의 산업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두 개의 큰 회사가 나바호족의 초대를 받아들였는데, 이 회사들은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법인이었다.”[각주:20] 결국, 페어차일드는 공장 건설 자금의 조달을 위해 나바호족으로부터 받은 70만 달러의 대출, “연방의 재산 출처 초과분에서 공급되는 인디언 사무국의 무료 설비, 매우 낮은 시간당 임금, 부동산세로부터의 자유, 노동부Department of Labor가 뒷받침하고 있는 훈련 프로그램을 위한 자금지원의 이익을 보았다.[각주:21] 이런 요인들 모두가 중요했으나, 결국에는 제품의 질이 사업체 내에서 공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요인이었으며, 또 그 요인은 공장이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디지털 자원으로서의 인종과 젠더: 초기 창조 계급 노동자로서의 나바호족 여성

 반도체 제조는 현미경을 사용해 수행되었으며, 세부사항에 대한 정성스런 주의력, 탁월한 시력, 높은 기준의 품질, 강도 높은 집중력을 요했다. 그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모두가 일을 계속했던 것은 아니다. 페어차일드에서 1974년까지 일했던 나바호족 공정 엔지니어 짐 투트Jim Tutt가 말하길, “그 작업은 현미경을 사용하는 지루한 작업이었어요. 노동자들은, 그러니까 노동자들 중 몇몇은, 현미경을 다룰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걸 들여다보는데 하루에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으니까요].”[각주:22] 이런 힘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했던 수백 명의 나바호족 여성들은 뛰어나게 작업했고, 공장에 의해/대해 생산된 산업 담론은 그 성공을 노동자들이 가진 인디언의 인종적 특성과 여성 젠더에 돌렸다. 페어차일드에서, 여자 조립 노동자를 향한 선호는 너무나도 강해서 실질적으로 남자는 페어차일드 공장의 대다수의 직무에서 배제되었고, 나카이는 회사가 공장에 더 많은 남자를 고용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공을 들여야 했다.[각주:23]

 페어차일드 사보는 현미경 위에 머물고 있는 사진과 함께 나바호족 숙녀들이 통합 회로를 조립하고 있는 엄청난 일을 언급하면서, “페어차일드 쉽록: 성공 이야기Fairchild Shiprock: A Success Story라는 제목의 한 이야기를 게재했다. 공장의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기사는 직조와 은세공 같은 창조적인 문화적 기술을 회로 구축과 동일시한다. 페어차일드 사보와 <비즈니스 위크> 모두, “나바호족이 가진 자연스러운 특징의 떼 묻지 않은 풍부함 인디언들의 타고난 유연성과 재주를 발견하고 이용한 공을 공장 관리자인 폴 드리스콜Paul Driscoll에게 돌렸다. “가령, 양탄자 직조를 해온 수년 이후에, 인디언들은 복잡한 패턴을 시각화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복잡한 통합 회로 설계를 암기하고 선별 및 품질 관리에 있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각주:24]

 외주화되거나 내부에서 조달되기 이전의 시기에, 즉 통합 회로가 그것을 상상하고 설계했던 남자들이 머물렀던 바로 그 똑같은 복합 단지 혹은 건물에서 제조되었을 때, 유색인종 이주 여성은 이상적인 노동력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유동적이고, 값싸고, 무엇보다 유연했기 때문이었다. , 그들의 고용주가 공장을 닫고 가장 선호할 만한 조건을 가진 지역에 다시 열 수 있었던 반면에, 이들은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었고 대안적인 형식의 일을 구하러 다닐 수도 없었다. 인디언이 본질적으로 유연하다는 관념은 정보화 시대의 세계화에 대한 많은 연구에 영향을 줬던 유연 노동이라는 생각을 인종화하는 동시에 그것에 앞서나갔다.

 기 세네스Guy Senese가 쓰듯, “고용자 사용가능도는 산업계가 매우 원하던 것이었는데, 이는 인디언 보호구역에 공장을 여는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인디언 지방 내에 다른 임금 기반 고용 선택지가 거의 완전히 없었을 뿐더러 실업률 또한 극도로 높았던 것은 고용주가 선호할 만한 환경을 거의 보장해주었다. 그는 그 공장을 계속되는 인디언 노동 착취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자리매김하는데, “리버럴 정부의 대출 및 세금 감면과 함께, 인디언 노동의 특질과 저비용모두 산업계를 끌어들인 주된 요인이었다[각주:25]고 쓴다. 낮은 실패율로 정의된 품질Quality, 산업계 내에서 가장 큰 문제였다. 칩 생산과정의 많은 부분들은 공예가적 수작업을 요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실패는 흔했으며, 여전히 페어차일드가 진행하는 사업의 주요 부분이었던 군사 및 우주 프로그램의 계약에 있어 특히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각주:26] 따라서, 브로셔나 보도자료 같이 외부에 공개되는 페어차일드의 출판물에서나, 쉽록 프로젝트를 다루는 언론의 설명에서나, 더 많이 논의된 것은 비용보다는 품질/자질Quality이었다. 그리고 이는 특정 종류의 자질이었는데, 바로 인디언의 장인정신이었다.

그림1. 쉽록 헌정 기념 브로셔, 1969년 9월 6일, lot X5184.2009, folder 102725169, Computer History Museum, Mountain View, CA.

 회로의 품질이 인디언의 인종-문화적 특성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논의는, 새로운 쉽록 공장과 그 공장의 노동자들을 기념하는 1969년의 페어차일드 브로셔에 매우 명시적으로 표명된다. 첫 번째 페이지는 갈색, 검정색, 흰색의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양탄자의 대형 사진을 싣고 있는데, 이 양탄자는 직각을 연결하고 교차시키는 것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패턴으로 직조된 것이었다(그림1). 이 사진에는 짧은 단락이 붙어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새로운 쉽록 시설과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동반 관계에 대한 헌정을 기념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각주:27]

 그 다음 페이지에서는 동일한 유형의 양탄자를 직조하고 있는 여성이 묘사되고 있는데, 그녀의 얼굴은 작업 중이라 아래를 향하고 있고, 씨실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그림2).

그림2. 쉽록 헌정 기념 브로셔, 1969년 9월 6일, lot X5184.2009, folder 102725169, Computer History Museum, Mountain View, CA.

 동반되는 텍스트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켜준다. “모든 나바호족의 예술과 같이, 직조는 독특한 상상력과 장인정신으로 수행되며, 수 세기 동안 그 방식으로 수행되어 왔다.” 나바호족의 공예에 대한 목가적인 헌사가 막 시작되려 할 때, 브로셔는 한 나바호족 여성의 사진으로 이동한다. 이 여성은 브로셔 독자를 응시하면서 현미경 위에 서있고, 한 백인 남성은 그녀의 작업을 감독하고 북돋우면서 얼굴을 그녀의 어깨 너머로 향하고 있다(그림3). 텍스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장인 문화적 작업에서 산업적인 임금 노동으로의 이행을 협상하고 있다. “전자제품 디바이스, 트랜지스터와 통합 회로의 구축 역시 완벽함에 대한 동일한 개인적 헌신을 요한다. 따라서,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사업규모를 확장할 필요가 있었을 때 그 관리자가 뉴멕시코 쉽록 내부와 주변에 살고 있는 고도로 숙련된 사람들이 모인 구역을 고려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림3. 쉽록 헌정 기념 브로셔, 1969년 9월 6일, lot X5184.2009, folder 102725169, Computer History Museum, Mountain View, CA.

 양탄자 직조와 같이 고도로 숙련된여성의 문화적 노동을 하이테크 공장 노동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인 자연/본질nature에 대한 호소는 이어지는 이미지에 의해 암시된다. “콤샛COMSAT 같은 커뮤니케이션 위성에 쓰이는페어차일드의 9040 통합 회로를 묘사한 이 이미지는 확대되어 그 기하학적 구조가 페이지 전체를 채울 정도이다(그림4). 첫 번째 페이지에 묘사된 양탄자의 패턴과 회로의 패턴 사이의 유사함은 현저하면서도 기이하다. 이 유사함은, 인디언의 양탄자가 통합 회로 내부에서 찾을 수 있는 동일한 패턴 혹은 미학적 전통의 다른 물질적 반복일 뿐이라는 시각적 주장을 표명한다. 반대편 페이지에 쓰여 있기를, “타고난 나바호족의 기술과 반도체의 정확한 조립 테크닉의 혼합은 쉽록 공장을 페어차일드의 가장 뛰어난 시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생산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품질의 측면에서도 말이다.”

그림4. 쉽록 헌정 기념 브로셔, 1969년 9월 6일, lot X5184.2009, folder 102725169, Computer History Museum, Mountain View, CA.

 다시금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유연한노동자라는 관념, 즉 회로의 설계를 실에다가 하던, 금속에다 하던 간에, 이를 세공하는 데에 적응할 수 있으며 이 작업에 문화적으로 적합하거나 고정되어 있다는 본질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라는 관념은 인디언의 정의에 대한 낭만적 관념과 그들이 미국의 기술사에서 맡았던 역할에 호소하고 있다. 하이테크 제조 세계의 독특하고 가치 있는 상품으로서의 인디언 정체성, 사라져 가는 자원이자 근대성을 향한 국가의 멈출 수 없는 추동력의 한 사례이자 그 추동력에 참여하는 것으로서의 인디언 정체성을 향한 노스탤지어적 호소는 브로셔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완수된다. 브로셔의 마지막 이미지는 나바호족 보호구역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장엄한 쉽록 산 뒤에 놓여있는 태양 사진이다. 이 이미지에는 <땅의 영혼의 노래, 기원 전설 Song of the Earth Spirit, Origin Legend>이라는 시가 중첩되어 있다. 이를 낭독해보자. “참으로 아름답구나, 참으로 아름답도다 / , 그러니까 이 땅 안에 있는 영혼인 나 / 땅의 발이 나의 발이고 / 땅이 다리가 나의 다리로다,” 이렇게 계속된다. 산업 브로셔에서 시가 표준적인 관습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도 위험하진 않을 거 같다. 시의 첨부는 회로 제조가 본질적으로 토착민들의 일이라는 주장을 견고하게 만든다.

 이 때는 하이테크 제조의 영적이고 자연적인 자질을 주장하기에 적절한 해이기도 했다. 시인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와 출판 사업자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 같은 반문화 구루들은 인디언을 미국 상업 문화의 아노미와 소외에 대한 치유책으로 보았으며, 또한 인디언들은 태생적으로 자연과 연결된 것으로 이미 인식되고 있었다.[각주:28] 스나이더는 자신을 불교도 무속인으로 정체화했으며, 샌프란시스코 필모어 웨스트의 트립 페스티벌Trips Festival에서 상연된 브랜드의 멀티미디어 쇼 <미국은 인디언이 필요하다 America Needs Indians>에서는 그가 오레곤에 있는 웜 스프링스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을 방문하면서 모은 자료가 사용되었다. 곧 이어 브랜드는 <홀 어스 카탈로그 Whole Earth Catalog>를 만들게 되는데, 이는 미국 내 반문화의 열광적인 지지자를 위한 DIY 운동을 규정했던 아주 중요한 책 시리즈였다. <홀 어스 카탈로그>는 소살리토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인 더 웰 The Well,” 혹은 홀 어스 렉트로닉 링크 Whole Earth ’Lectronic Link라는 가장 영향력 있던 초기 온라인 공동체를 파생시켰으며, 20세기 하반기 동안 반문화에서 사이버문화로의이동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프레드 터너Fred Turner는 똑같은 이름을 딴 책에서, “반문화에서 사이버문화로의문화적 형성 과정을 기록한다.[각주:29]

 전자제품 제조를 자발적이고 숙련된 토착 여성에 의해 수행되는 담요 직조의 하이테크 버전으로 묘사한 것은 두 가지 목표에 복무했다. 그런 묘사는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공장이 급작스럽게 들어온 것이 전통적인인디언들의 활동과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으로 보이게 허용했으며, 임금 노동과 창조적인 문화 노동 간의 경계를 흐리는 과정을 개척했다. 하나의 노동은 매끄럽게 다른 하나의 노동이 되었다. 실제로는, 하나의 노동이 다른 하나의 노동을 대체했을 수도 있다. 새로운 8시간의 노동일은 페어차일드에서 일하는 나바호족 사람들의 가족생활의 많은 측면들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공장을 묘사하는 1969년의 페어차일드 브로셔와 여타 자료들은 양탄자를 회로로 대체하는 것이 문화적 상실, 혹은 더 심하게는 문화 제국주의의 한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현존하는 토착적 문화 실천의 연장이라고 주장한다. , 이는 정보 시대의 초창기를 위한 문화적 작업이다. 토착민들이 회사의 연구와 개발 부문에 관여하는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들은 토착적 설계가 전자제품 회로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일종의 역방향의 식민주의고 전제한다.

 나바호족 여성들이 뛰어난 방직공이자 보석 제작자이기 때문에 조립 일에 뛰어났다는 주장은 그 공장에 대한 당대의 설명들 전반에서도 드러난다. 언론의 설명, 인디언 사무국의 보도 자료, 페어차일드의 내부 문서 모두 인디언을 최초의 정보화된 창조 계급노동자로 묘사했는데,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의 영향력 있는 공식을 사용하자면, 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했다.[각주:30] 플로리다는 소프트웨어 설계, 공학, 이발에서의 일이 제조와 같은 전통적인 산업에서의 일보다 21세기 초기 노동자들에게 더 소구하는 바가 많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제작의 행위에 수반되는 내재적 쾌락뿐 아니라 노동자에게 부여된 개인적 자유를 이유로 한다. 텍사스 오스틴,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의 리서치 트라이앵글Research Triangle과 마찬가지로 실리콘 밸리는 노동자가 컨텐츠, 그리고 암묵적으로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창조 계급도시다. 창조 계급의 구성원들은 임금을 잘 받을 뿐만 아니라 창의적으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에 행복해한다. 이런 주장의 씨앗은 쉽록의 브로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브로셔는 토착 인공물을 닮은 전자제품 인공물을 만듦으로써 창의성을 표현하는 본질적으로 행복한 노동자를 묘사하고 있다. 세금으로부터의 자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함으로써 산업을 유치하려는 미국과 미국 이외의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을 고려해볼 때, 방직기과 현미경으로 바쁜 나바호족 여성의 만족한 모습을 담은 브로셔의 사진은 특히나 매력적이었다.

 또한 페어차일드가 자연/본질nature과 기술특히 전자제품 제조간의 연결고리를 주장한 것은 우연에 가까운 찰나였다. 칩 제조는 악명 높게도 더러운 산업이고, 페어차일드와 여타 반도체 제조업체의 노동자들은 오염 관련 질병에 걸렸으며 회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의 산호세에서는, “1970년대 중반 즈음에, 생산 노동자들 사이에서 화학물 노출에 대한 이야기가 표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각주:31] 우라늄, 가스, 석탄,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의 추출에 의해 이미 높았던 인디언 보호구역의 오염률을 고려해 볼 때, 반도체 제조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했던 지역에서 진행 중이었던 환경 악화 관행을 지속시켰다.[각주:32] 결국, 나바호국은 공장으로부터 얻으리라 예상했던 것만큼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지 못했으며, 폐기물과 그것의 장기적인 결과를 처리하게 되었다.

 나바호족 정체성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하이테크 오염, 점점 힘을 얻어가는 노동 조직, 새롭게 정치화되고 가시화된 미국 인디언의 시민권 운동에 대한 염려에 직면하여, 쉽록의 토착 전자제품 노동자들은 과거와 미래, 원시와 근대, 창의성과 자본주의의 평화적인 공존과 통합의 사례로서 동원되었다. 이들은 디지털 노동손과 손가락의 노동이 토착적인 문화적 맥락에서 기술적이고 상업적인 혁신의 세계로 별 탈 없이 이전될 수 있다는 증거로서 소환되었다. 그 과정에서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될 거라면서 말이다.

 나바호족은 관리자들에 의해 인내심, (낮은 절도율에서 볼 수 있는) 사유 재산에 대한 존중, 전투성의 결여, 일에 대한 자부심[각주:33]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됐다. 미국 다른 지역들의 파업 중인 노동자와 다르게, 이들은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노동력이었다. 페어차일드의 1969년 브로셔는, “이런 진보의 실제 가치는 직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직업을 만들어주는 데에 있다. 이런 직업들은 그들을 자신들이 사랑하는 땅에 머물도록, 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도록 해줄 것이다.”

 사업의 일환에서 나바호족 노동자의 비이동성과 취약성은 목적의식이 있고 돌봄에 토대를 두고 있는 문화 보존의 행위로 수사학적으로 다시 제시되었다. 산업계를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견인했던 애초의 이유, 연방 정부에서 미국 원주민에게로 향하는 지원을 점차 없애나갈 터인 그 이유는 원주민들을 보호구역에 머물게 하고 조상의 고향을 존속시키는 데 도움이 될 계획의 일환으로 표상되었다.

 산업적인 노동 형식에 비해 새로웠던 노동력, 즉 훈련받은 노련한 토착 노동력의 이점은 쉽록 지역에 있는 다른 공장 관리자의 발언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쉽록 지역에 있는 제너럴 다이내믹스 공장의 관리자였던 C. J. 제임슨C. J. Jameson이 말하길, “이들에게는 좀 더 산업적인 지역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이 없다.”[각주:34] 이는 인종화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삽화이다. 근대적인 노동 형식에 어울리지 않아 신뢰할 수 없는 노동자로 인디언을 바라봤던 이전의 신념은 원시적습관의 긍정적 가치에 대한 주장으로 변형되었다. 이런 변형은 젠더와 인종의 고정관념화가 가지는 유동성과 변형 가능성을 보여준다. 민족이라는 렌즈를 통해 생산성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관리자에게 도움이 될 때, 인디언은 사려 깊고, 유순하고, 근면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 전략은 디지털적인 노동 착취를 문화적이고 인종적인 정체성의 표현을 위한 발산수단으로 묘사함으로써 정당화하는 매우 효과적인 주장의 최초의 반복들 중 하나였다. 세부사항과 패턴, 사려 깊은 수공예, 극기심과 유연성에 대한 주목은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코위가 적고 있듯, 이런 특성들은 제품을 가능한 한 가장 저렴한 장소에서 제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동하는 전 지구적 자본의 요구에 반응하여 적용되었다.

 인종과 젠더는 그 자체로 유연한 자본의 형식들이다. 인종과 젠더가 토착민 관리에 대한 상업적 이해관계의 굴레를 정당화하다 못해 상찬하는 강력한 서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때, 나바호족 여성은 유순하고 유연하며 본질적인 전자제품 노동자로 이해되고 인식되며, 그 결과로 토착적 정체성이 변화한다. 그리고 인종과 젠더가 도움이 되지 않을 때, 그에 따라 토착적 정체성은 다시금 변화한다. 라틴계, 아시안, 아프리카계 미국인 그리고 그 이후의 인디언 여성들은 모두 민첩한 손가락과 수동적인 성격[각주:35]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마킬라도라에서 일하던 멕시코 여성과 마찬가지로, 미국 인디언 여성은 동일한 방식으로 동양인으로서, 디지털 산업의 이상적인 노동자로서 묘사되었다. 보석과 직물을 섬세하게 만든 경험이 있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우리가 사는 오늘날과 지난 수십 년 동안, 아시아인의 손가락은 민첩했는데, 1960년대와 1970년대 나바호족 여성의 손가락 역시 이런 방식으로 상상되었다. 이 사례에서, 개인이 아닌 인종에 속하는 특성과 행동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특정 인구집단을 이해하는 인종화가 어떻게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인지를 볼 수 있다.

 양탄자 직조는 나바호족 사람들이 본질적인 회로 조립 노동자라는 쉽록 브로셔의 시각적 논의에 핵심이 되는 것이다. 양탄자 직조는 공장의 성공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모든 출판물에서 언급된다. 인디언들이 어떻게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 자신들이 하는 일에 그렇게 뛰어났는지에 대한 논의로서 언급되었던 은세공, 보석 제작, 그리고 여타 토착적인 나바호족의 관행들과 달리, 양탄자 직조는 특히나 여성적인 활동이었다. 다큐멘터리 <세계를 직조하기 Weaving Worlds>(2008)에서 베니 클라인Benny Klain이 양탄자와 담요를 직조하는 토착 방직공을 인터뷰하며 알아냈듯, 직조는 중요한 창조적 발산 수단이자 영적 관행인 동시에, 어려운 시기 여성을 위한 개인적 소득의 든든한 원천이었다. 한 방직공이 설명한 대로, 직조가 우리를 먹여 살렸다.” 하지만 동시에, 인디언 교역소 소유주와 순회하는 양탄자 구매자들이 제공하는 낮은 가격은 인디언 여성 방직공들의 노동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리라는 점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직조는 여전히 토착 여성의 지식과 노동에 대한 착취의 강력한 상징이다.

 게다가, 나바호족의 직조는 특히나 복잡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제니퍼 드넷데일Jennifer Denetdale에 따르면, 나바호족의 직조는 진정성 있는 것이자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바호족의 직조가 푸에블로족의 직조를 문화적으로 전용한 것이라고, 즉 다른 부족으로부터 학습했기에모방적이거나 오염에 가까운 토착적이지 않은 기술이라고 믿었다. 알젤라 하스Angela Haas하이퍼텍스트로서의 조가비 구슬 Wampum as Hypertext에서 그렇게 했듯이[각주:36], 드넷데일은 직조를 중요한 지성적 전통으로 독해한다. 직조, 디지털 컴퓨팅, 그리고 여성 간의 친연성과 역사적 연결고리는 (가장 유명한 것은 사이보그 선언문이지만) 사이버페미니즘 이론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실리콘 밸리의 사업 담론은 나바호 여성을 본질적인사이보그로, 즉 실리콘을 자신들의 매체로 사용하며 자연/본질nature 그 자체를 체현하고 있는 존재로 표상했던 자료 아카이브를 만들어냈다. 사이버페미니즘 이론가 새디 플랜트Sadie Plant는 토착적 실천으로서의 직조와 소프트웨어 생산 간의 회로를 완전하게 만든다. “직물 자체는 아주 말 그대로 모든 기술의 소프트웨어적 안감이다.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은 마이크로 프로세스다. 실을 잣는 데에 사용되는 가락과 바퀴는 그 이후의 모든 자축, 바퀴, 회전의 기반이며, 방직기에 엮인 실들은 직조의 가장 추상적인 과정들을 구성한다.”[각주:37]

 페어차일드 쉽록의 운영에 관한 담론은 전자제품 제조에 대한 나바호족 여성의 친연성이 복잡함, 상세함, 품질을 향한 본질적인 충동을 반영하고 충족시킨다고 묘사했는데, 이런 충동은 젠더화된 동시에 인종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노동을 수행한 여성들은 수 세기 동안 여성들이 생존하기 위해 공장 노동을 수행해 온 것과 같은 이유로 그 노동을 수행했다. 70년대의 리버럴 담론은 노동 자체를 당대 부상하고 있던 다문화주의 담론과 봉합함으로써, 미국 원주민 같이 취약한 인구집단을 이런 종류의 노동에 처하게 만든 것과 관련해 자신의 양심을 달랬다. 이런 종류의 노동이 이미 원주민의문화적 생산과 유사하다면, 즉 이런 종류의 노동이 담요를 직조하는 것과 같이 인디언이 수 세기 동안 무불로 해왔던 시초적인 무불 노동과 유사하다면, 이것이 어떻게 착취적일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창조적 노동으로서, 즉 여성들이 자신들을 표현하기 위해 수행하는 노동으로서 재정의되고 상상되어왔던 것은, 디지털 미디어 디바이스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방대한 종류의 기술을 생산하는 기나긴 공급 사슬에서 가장 따분한 과업들 중에서도 다름 아닌 반도체 및 전자제품 제조였다. <정밀성 있는 노동자를 구하기 위해 산업계가 인디언에 의존하다 Industries Turn to Indians for Precision Workers>라는 제목의 인디언 사무국 보도 자료에서, 기고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정밀성을 필요로 하는 일에 대한 본질적인 친연성을 가지고 있는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높이 올라가는 철강 골조공사 노동자이자 복잡한 디자인의 방직공으로서 존재한다. 이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전자제품 공장 노동이 놓여있는데, 이는 숙련도에 대한 자부심에 뿌리박고 있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각주:38] 반도체 제조는 경제적 생존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나바호족의 문화 보존 행위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나바호족 여성들의 뇌가 본질적으로 직각의 색상과 도형 패턴으로 사유하고있기 때문에 이들이 회로를 만든 것이 아니다. 나바호족 여성들이 극기심, 손재주에 대한 자부심과 같이 인디언에게 고유한 덕목을 가지고 있어서, 혹은 본질적이고 생득적인 수공예적 기민함을 가지고 있어서 회로를 잘 만든 것도 아니다. 그리고 페어차일드는 이런 특성들 때문에 나바호족 여성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 보조금에 사용할 수 있는 세금 인센티브, 해당 지역에서의 노동조합 및 기타 고용 선택지의 부재, 인디언을 위한 직업 교육으로서의 경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인센티브의 일환으로 미국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중장비의 관대한 기부까지. 회사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야 이런 특성들이 식별됐다.

 페어차일드의 회장이자 CEOC. 레스터 호건 박사Dr. C. Lester Hogan1969년에 저희는 향후 몇 년 내에 나바호에서 가동 중인 거의 모든 공장이 확장되고, 이와 더불어 쉽록 공동체가 발전하고 모든 나바호족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예상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나바호족 여성의 첨단 전자제품 부품 생산은 1965년부터 1975년까지 한시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될 터였다. 러셀 민즈Russell Means를 필두로 한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의 단체원들이 공장을 장악한 1975년 이후, 페어차일드는 공장을 닫았고, 나바호족 사람들은 더 이상 디지털적인 모범 소수자가 아니게 됐다.

 페어차일드는 불안정한 노동 환경을 그 이유로 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공장 폐쇄가 모든 사업체를 해외로 이전시키려는 욕망과 관련 있다고 의심했다. 나바호 지역보다도 임금이 훨씬 저렴하고, 또 노동자들이 저항의 조건에 덜 경도된 곳으로 이전하려는 욕망 말이다. 알카트라즈 점거Alcatraz Occupation(1967-1971)와 운디드니 사건Wounded Knee incident(1973) 이후에,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은 전투적 단체로 인식되었으며 확실히 산업계는 이 단체와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기를 원했다.

 점거를 위해 명시된 이유들에는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같은 것이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노동조합이 결코 결성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산업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했던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의 욕망 또한 폐쇄에 한 몫 했다고 추측했다.[각주:39] 이 국면에서는 토착 여성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충하는 관점이 충돌했다. 하나는 토착 여성을 본질적으로 디지털적인 노동자로, 복잡한 패턴을 볼수 있고, 그 패턴을 힘들이지 않고 완벽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소형 회로에 재창조할 수 있는 노동자로서 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토착 여성을 전투적인 남성의 전투적인 보조자 및 동조자로, 더 심하게는 그 자체로 전투적인 존재로 보는 관점이었다. 일부 나바호족 사람들은 나바호족 실리콘 밸리를 상상하며 공장 폐쇄를 지금까지도 애석해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이 이 운명에서 벗어난 것에 안도했다.[각주:40]

인종과 디지털 플랫폼

 『예상치 못한 장소에 있는 인디언 Indians in Unexpected Places에서, 들로리아는 인디언을 원시주의, 기술적 무능력, 물리적 거리, 그리고 문화적 차이의 관점에서 상상하는 미국인들의 관습이 동시대에 원주민을 다룸에 있어서 익숙하게 통용되는[각주:41] 채로 유지되었다고 쓴다. 토착 여성들에 의해 초근대적인 기술에 부여된 독특한 이점을 다룬 페어차일드사의 논의는, 인디언과 전자 문화가 정반대 극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는 새롭고도 매력적인 상을 그려나가기 위해 이런 통용된 의미를 이용했다.

 닉 몽트포르Nick Montfort와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저서 레이싱 더 빔 Racing the Beam에는 플랫폼에 대한 대단히 유용한 정의가 등장하는데, 플랫폼이란 무엇이든 간에 프로그래머가 개발할 때 당연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무엇이든 간에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에게 요구되는 작업들[각주:42]이다. 이 논문은 바로 그 무엇이든 간에, 즉 보통은 사용자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디지털 미디어 디바이스의 창조에는 필수적인 물질적 조건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값싼 여성 노동의 존재는 디지털 미디어의 현존에 대한 선제조건으로서 절대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진다. 몽트포르와 보고스트가 아타리 VCSAtari VCS 게임 플랫폼의 문화적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줬듯이, 소프트웨어는 언제나 하드웨어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제약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런 제약들 중 중요한 것은 (언제나) 비용이(). 리사 파크스Lisa Parks가 주장하듯 여성의 노동을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의 필수적인 일부로서 독해해야 할 탁월한 이유가 존재하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제공하는 자원은 개발자, 사용자,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 상업 및 개발의 전체 회로에 의해 당연하게 여겨지기때문이다.[각주:43] 1965년에서 1975년까지 나바호족의 땅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유연하게, 값싸게,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하드웨어에 접근할 수 없다면 혁신과 발전은 불가능하다.

 몽트포르와 보고스트는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유용한 분류 체계를 제공하는데, 이 분류 체계는 학자들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의 다섯 가지 층위를 목록화한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층위는 수용, 인터페이스, 형식/기능, 코드, 플랫폼이다. 이들이 주장하길, 앞의 두 가지 것들은 단연코 가장 비판적인 주목을 받았는데, 이들의 주장은 옳다. 뉴미디어를 절차적이기도 한 텍스트로 다루기보다는 순수하게 시각적인 텍스트로 다루는 방법론에 많은 학자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확히 이런 이해할 만한 이유로 인해 소프트웨어 연구는 뉴미디어 연구와 분리된 하나의 분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몽트포르와 보고스트, 웬디 희경 전Wendy Hui Kyong Chun, 알렉산더 갤러웨이Alexander Galloway, 캐서린 헤일즈N. Katherine Hayles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 디지털은 ‘~인 것처럼 보일appears뿐만 아니라 ‘~을 한다does.’[각주:44]

 소프트웨어의 절차적 코드, 하드웨어, 인프라구조, 역사, 인종적이고 젠더적인 형태화에 주목하는 일 없이 컴퓨터 인터페이스나 여타 시각적 형식의 재매개를 통해 이용 가능한 시각적 재현을 독해하게 되면, 디지털이 무엇인지에 대한 요점을 놓치게 된다. 플랫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규정된다면, 전이 우아하게 표현한 바대로[각주:45]플랫폼과 창조적 표현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은 디지털 미디어가 스크린-깊이 그 이상의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는 경향을 교정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언제나 테드 프리드먼Ted Friedman베이지색 박스 문제라고 부른 것을 갖고 있었다. 광고주들은 칙칙해 보이는 제품을 마케팅하는 데에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언뜻 보기에 거기에는 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각주:46] 1997년의 인텔 인사이드 Intel Inside캠페인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에 독특한 스타일과 이야기를 부여했던 극도로 견고한 광고화 노력이었다. 이 캠페인에서, “버니 슈트bunny suits혹은 말끔한 슈트로 완전히 차려입은 인간 형상들은 기억하기 쉬운 음악에 맞춰 춤추고 뛰어다녔다. 전자제품 박람회 기조연설의 라이브댄서이자 봉제 인형처럼 보이는 인텔의 버니 피플bunny people은 매우 유명해졌으며, 그 이름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여러 디지털 디바이스를 제조하는 회사들은 종이 스티커가 동봉된 인텔 칩을 사용했는데, 이 스티커는 소비자들에게 인텔의 내부Intel Inside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디바이스의 내용물을 살펴보고 싶어 하는 욕망도, 이상적으로는 그럴 욕구도 없었기 때문에, (인텔의 내부가 있다는) 주장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컴퓨팅 하드웨어의 내부를 들여다 볼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말끔한 방에서 행복하게 무불로 칩을 만들며 춤추는 버니 슈트를 입은 노동자는 아닐 것이다.

 대신에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아시안 여성, 라틴계 여성, 나바호족 여성과 다른 유색인종 여성들이다. 디지털 문화 내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컴퓨팅 산업의 뿌리, 그리고 전자제품 공장에서 인종과 젠더를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던 특정한 물질적 실천들을 되돌아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노동은 디지털 컴퓨팅 역사의 매우 이른 시기 내에서 시간적으로 은폐되며, 또한 공간적으로도 은폐된다. 우리는 인종이 디지털 플랫폼 생산의 핵심 측면으로 작동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외딴 장소에서 보통은 이런 기술들과 연관되지 않는 현장과 신체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노동은 아시아의 폐쇄형 공장에서 사용자로부터 은폐된다. 이 노동은 유튜브 상에 있는 불법적으로 녹화된 휴대폰 비디오나 접근권에 대한 명백한 장벽(다시 말하자면, 볼 것이 없는 상태)을 극복하려는 탐사보도 기자의 노력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볼 수 있는 것이 된다.[각주:47] 그러나 볼 권리 The Right to Look에서 니콜라스 미르조에프Nicholas Mirzoeff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줬듯이, 시각 문화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자신의 무결함에 저항하거나 서발턴의 경험을 기록하는 이런 객체, 실천, 인공물을 정확히 보라고 우리에게 명한다.[각주:48] 디지털 노동의 스펙트럼 위에서, 아이폰, 미사일, 서버에 사용되는 칩을 납땜하는 공장 노동은 사람들이 구할 수 있는 만큼이나 기계와 가깝게 있으며,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이나 디지털 생산수단인 컴퓨터와 가깝게 있다. 이 노동은 창조 노동도, 무불 노동도 아니다. 초기 컴퓨팅 역사의 결정적인 국면 동안, 해당 산업의 선두를 달리고 있던 전자제품 회사가 공장 노동을 그런 방식으로 표상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인디언 땅에 있었던 디지털 디바이스 제조 이야기는, 생산의 통합 회로 내부에서 유색인종 여성이 수행하는 핵심적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여성의 토착적 문화 생산의 담론이 사용되어 왔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디지털 미디어 학자들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를 대표적인 사이버스페이스 이론가로 알고 있지만(유명하게도 그는 디지털 공간이 실재의 사막으로 묘사되는 영화인 <매트릭스 The Matrix>에 인용된다), 그의 책 생산의 거울 The Mirror of Production은 포스트 산업 시대에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노동의 의미와 더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각주:49] 칼 마르크스Karl Marx에 대한 기백이 넘치는 비판 속에서, 보드리야르는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 개념으로서의 노동 혹은 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의 집착을 비판의 목표로 삼는다. 보드리야르가 쓰길, 이론가라면 인간의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것에 기초해 다른 정치경제를 상상해야만 한다. , 이론가라면 경제적 가치 너머의 영역을 찾아야만 한다.

 1969년 페어차일드의 쉽록 브로셔는 반도체 제조 노동을 사랑의 노동으로, 더 정확히는 소외된 노동이 아니라 행위적이거나 창조적인 인종-노동으로 표상함으로써 정확히 이를 수행한다. 반도체 생산은 담요의 직조처럼 인디언 정신의 본질적 일부로서, 위태롭지만 궁극적으로는 근대세계에 의해 가능해지는 문화적 정수의 표현으로서 자리매김한다.

 

  1. Donna Haraway, Simians, Cyborgs, and Women: The Reinvention of Nature (London: Routledge, 1991). [한국어판: 도나 해러웨이,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 황희선, 임옥희 역, 아르테, 2023.] [본문으로]
  2. Aihwa Ong, Flexible Citizenship: The Cultural Logics of Transnationality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1999), 64. [본문으로]
  3. Tiziana Terranova, Network Culture: Politics for the Information Age (London: Pluto, 2004), vii, 184. [본문으로]
  4. Wolfgang Ernst and Jussi Parikka, Digital Memory and the Archive, Electronic Mediations, vol. 39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3), 265. [본문으로]
  5. Ted Smith, David Allan Sonnenfeld, and David N. Pellow, Challenging the Chip: Labor Rights and Environmental Justice in the Global Electronics Industry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2006), 357 [한국어판: 테드 스미스, 데이빗 A. 소넨펠드, 데이빗 N. 펠로우,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공유정옥 외 역, 메이데이, 2009.]; Jefferson Cowie, Capital Moves: RCA’s Seventy-Year Quest for Cheap Labor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99), 273; T. R. Reid, The Chip: How Two Americans Invented the Microchip and Launched a Revolution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84), 243; Karen J. Hossfeld, “Their Logic against Them Contradictions in Sex, Race, and Class in Silicon Valley, in Technicolor: Race, Technology, and Everyday Life, ed. Alondra Nelson and Thuy Linh Tu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1), 3463. [본문으로]
  6. 반도체는 모든 디지털 미디어 디바이스의 기반이다. 그리고 실리콘 밸리 역사가 데이빗 로스가 적은 바에 따르면, “어느 정도는, 1960년대 초기 이후에 생산된 반도체 디바이스에 기반한 거의 모든 인공물이 어떤 면에서는 페어차일드나 이전에 페어차일드의 피고용자였던 사람들이 만들었던 기술들에 의존한다.” 이와 같이 페어차일드는 디지털 미디어 산업의 대표주자 회사였으며, 그 산업적 역사와 노동 관행들은 실리콘 밸리가 될 터인 많은 것들의 분위기를 설정했다. (산업계 내에서 종종 “IC’s”라고 요약되는) 최초의 통합회로는 1960년대에 만들어졌으며, 미닛맨 미사일 유도 컴퓨터, 아폴로 유도 컴퓨터, 그리고 크레이, 버로우스, 컨트롤 데이터사가 생산한 최초의 고성능 컴퓨터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7. 1974년 초기가 지나서야 홈 컴퓨터는 대중적인 것이 되는데(인텔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기반한 알테어 PC는 최초의 스위치 기반 개인용 초소형 컴퓨터 키트였다), 1965년부터 1975년 사이에 쉽록 공장에서 생산된 통합회로는 제어와 디지털 기술로의 미디어 이행의 일부인 계산기, 항공우주 애플리케이션, 트랜지스터 라디오, 그리고 여타 전자제품들에서 사용되었다. 페어차일드는 실리콘 밸리의 첫 회사였으며, 고든 노이스 같은 창립자는 추후에 홈 컴퓨팅에 부채질을 할 인텔 같은 칩 회사들을 파생시켰다. [본문으로]
  8. Cowie, Capital Moves, 273. [본문으로]
  9. Kylie Jarrett, The Relevance of Womens Work: Social Reproduction and Immaterial Labor in Digital Media, Television and New Media 15.1 (2014): 1429. [본문으로]
  10. David A. Laws, A Company of Legend: The Legacy of Fairchild Semiconductor, IEEE Annals of the History of Computing 32.1 (2010): 60. 레슬리 베를린, 릴리안 호드슨, 크리스토프 레퀴에는 마이크로칩의 최초의 성공적인 제조업체와 그 분야에서의 지도자로서 페어차일드의 중심성을 강조한다. Michael Riordan and Lillian Hoddeson, Crystal Fire: The Birth of the Information Age (New York: Norton, 1997), 352; Leslie Berlin, The Man behind the Microchip: Robert Noyce and the Invention of Silicon Valle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402; Christophe Lécuyer, Making Silicon Valley: Innovation and the Growth of High Tech, 19301970 (Cambridge, MA: MIT Press, 2006), 393; Lécuyer and David C. Brock, Makers of the Microchip: A Documentary History of Fairchild Semiconductor (Cambridge, MA: MIT Press, 2010), 312. [본문으로]
  11. Mike Cassidy, What Went Wrong at Shiprockthe Fairchild Plant Promised a Better Future for the Navajos, but That Promise Was Never Fulfilled, San Jose Mercury News, May 7, 2000. [본문으로]
  12. “Interview with Charlie Sporck,” February 21, 2000, Los Altos Hills, CA. “반도체 산업의 어머니인 페어차일드는 해당 산업을 규정했다. 실리콘 제네시스 웹사이트에 쓰여 있는 바에 따르면, “페어차일드가 실리콘 밸리에 실리콘을 집어넣었다.”(“Silicon Genesis: An Oral History of Semiconductor Technology,” Stanford University, http://silicongenesis.stanford.edu/transcripts/spork.htm). 칩 제조업체 125군데 이상이 자신의 뿌리를 이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찾을 수 있다. 페어차일드는 인텔과 내셔널 반도체 같은 가장 큰 반도체 회사를 파생시켰다. 70년대 페어차일드에서 일했던 실리콘밸리의 간부인 데이빗 나카무라에 따르면, 밸리에 있는 많은 회사들의 로비에는 모든 칩 제조업체의 계보를 페어차일드에서 찾아내는 액자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저자가 직접 인터뷰). 그 포스터는 해당 산업을 위한 전국 협회인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가 생산했다. [본문으로]
  13.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Bureau of Indian Affairs, Electronics Industry Expanding on Navajo Reservation, September 2, 1966. [본문으로]
  14. Cassidy, “What Went Wrong at Shiprock.” [본문으로]
  15. Fairchild Camera and Instrument, News Release, Shiprock, New Mexico, September 6, 1969. [본문으로]
  16. Colleen M. ONeill, Working the Navajo Way: Labor and Culture in the Twentieth Century (Lawrence: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5), 235. [본문으로]
  17. Raymond Nakai, Fairchild Dedication (speech, Cline Library, Special Collections and Archives, Northern Arizona University, 1969). [본문으로]
  18. Philip Joseph Deloria, Indians in Unexpected Places (Lawrence: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4), 178. [본문으로]
  19. Guy B. Senese, Self-Determination and the Social Education of Native Americans (New York: Praeger, 1991), 218. [본문으로]
  20. Peter Iverson, The Navajo Nation (Albuquerque: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1983), 273. [본문으로]
  21.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피고용자였던 그렉 해리슨은 이렇게 상기한다. “인디언 사무국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노동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으며, “보호구역의 미국 원주민들은 직업과 기술이 절실히 필요로 했습니다” (“National Semiconductors Offshore Legacy Recalled as Company Readies China Facility,” Chip Scale Review: The International Magazine for Device and Wafer-Level Test, Assembly, and Packaging Addressing High-Density Interconnection of Microelectric IC’S, MayJune 2004). [본문으로]
  22. Jim Tutt, pers. comm., November 2011. [본문으로]
  23. 1970년 페어차일드 이사회 회의에서 이루어진 연설의 초고에서, 나카이는 이사회가 나바호족 노동자라는 기회를 잡은 것에 대해 칭찬하며, “귀사 조직이 주로 남성인 나바호족을 고용한 동시에 공작기계 부서를 쉽록에 두도록 결정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귀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나바호족 노동자의 재능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우리의 신념을 굳건히 합니다라고 썼다 (“Remarks to Be Made at the Fairchild Board of Directors Meeting,” Colorado Plateau Archives, Northern Arizona University, 1970). [본문으로]
  24. Industry Invades the Reservation, Businessweek, April 1970; 강조는 필자. [본문으로]
  25. Senese, Self-Determination, 218. [본문으로]
  26. 우주 프로그램과 초기 소프트웨어 산업 간의 관계에 대한 훌륭한 설명은 다음 책을 보라. David A. Mindell, Digital Apollo: Human and Machine in Spaceflight (Cambridge, MA: MIT Press, 2008), 359. 민델이 쓴 바에 따르면, “페어차일드의 한 관리자는 이렇게 보고했다. ‘아폴로는 신뢰성에 대해 우리에게 정말로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모든 단일 회로의 실패를 설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결국 아폴로를 위한 분리된 생산 라인을 발전시켰으며, 여기에는 높은 의욕과 세부사항에 대한 관심으로 선발된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본문으로]
  27. Shiprock Dedication Commemorative Brochure, September 6, [1969], lot X5184.2009, folder 102725169, Computer History Museum, Mountain View, CA. [본문으로]
  28. Shepard Krech, The Ecological Indian: Myth and History (New York: Norton, 1999), 318. [본문으로]
  29. Fred Turner, From Counterculture to Cyberculture: Stewart Brand, the Whole Earth Network, and the Rise of Digital Utopianis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327; Sherry L. Smith, Hippies, Indians, and the Fight for Red Pow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265. [본문으로]
  30. Richard L. Florida,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And How Its Transforming Work, Leisure, Community, and Everyday Life (New York: Basic Books, 2004), 434. [본문으로]
  31. Smith, Sonnenfeld, and Pellow, Challenging the Chip, 357. [본문으로]
  32. 1970, 쉽록 나바호족 노동자들의 선천적 결손과 방사선, 특히 우라늄 채굴에서 기인하는 방사능 간의 상관관계 연구는 임신합병증과 방사선에 대한 노출 사이의 연관성은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양쪽 부모 모두 쉽록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선천적 결손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사한 상관관계가 캘리포니아와 여타 지역의 조립 공장에서 발견되었다(L. M. Shields et al., Navajo Birth Outcomes in the Shiprock Uranium Mining Area, Health Physics 63.5 [1992]: 542). [본문으로]
  33. Industry Invades the Reservation. [본문으로]
  34. Ibid. [본문으로]
  35. Shruti Rana, Fulfilling Technologys Promise: Enforcing the Rights of Women Caught in the Global High Tech Underclass, Berkeley Women’s Law Journal 15 (2000): 272. [본문으로]
  36. Jennifer Denetdale, Reclaiming Diné History: The Legacies of Navajo Chief Manuelito and Juanita (Tucson: University of Arizona Press, 2007), 241; and Angela Haas, Wampum as Hypertext: An American Indian Intellectual Tradition of Multimedia Theory and Practice, Studies in American Indian Literatures 19.4 (2007): 77. [본문으로]
  37. Sadie Plant, Zeroes + Ones: Digital Women + the New Technoculture (New York: Doubleday, 1997), 305. [본문으로]
  38.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Bureau of Indian Affairs, Industries Turn to Indians for Precision Workers, [September 10, 1965]. [본문으로]
  39. 스포크는 실리콘 밸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컴퓨팅 문화의 부상을 노조에 대한 성공적인 저항의 공으로 돌린다. 이런 태도는 노력의 지분혹은 노동과 자본에 대한 급진적으로 기업가적인 입장에 의존하는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후반 이런 논리가 어떻게 기술 산업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음을 보라. Gina Neff, Venture Labor: Work and the Burden of Risk in Innovative Industries (Cambridge, MA: MIT Press, 2012), 195. [본문으로]
  40. Tutt, pers. comm.. [본문으로]
  41. Deloria, Indians in Unexpected Places, 4. [본문으로]
  42. Nick Montfort and Ian Bogost, Racing the Beam: The Atari Video Computer System (Cambridge, MA: MIT Press, 2009), 180. [본문으로]
  43. Lisa Parks, Things You Can Kick: Conceptualizing Media Infrastructures (paper presented at the American Studies Association conference, San Juan, Puerto Rico, 2012). [본문으로]
  44. Wendy Hui Kyong Chun, Programmed Visions: Software and Memory (Cambridge, MA: MIT Press, 2011), 239; Chun, Control and Freedom: Power and Paranoia in the Age of Fiber Optics (Cambridge, MA: MIT Press, 2005);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Cambridge, MA: MIT Press, 2007), 450; and Alexander R. Galloway, Protocol: How Control Exists after Decentralization (Cambridge, MA: MIT Press, 2004), xxvi, 260. 45. Chun, Control and Freedom, 129. [본문으로]
  45. Chun, Control and Freedom, 129. [본문으로]
  46. Ted Friedman, Electric Dreams: Computers in American Culture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5), x, 275. [본문으로]
  47. 인기 있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이크 데이지의 1인 쇼 <스티브 잡스의 고뇌와 환희>는 폭스콘의 선전 공장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묘사했다. 그가 주장하길, 이 공장에서 애플의 아이패드는 부상과 반복성 스트레스 장애로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은 손을 가진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설명의 일부 세부사항들은 꾸며낸 것으로 드러났지만, 뉴욕타임스는 이어서 폭스콘의 노동 조건에 대한 여러 차례의 탐사보도 특집 기사를 게재해 만연한 초과 근무 및 여타 노동 관행들을 밝혀냈고, 소비자 전자제품 제조과정의 숨겨진 스트레스를 보여주었다. (Charles Duhigg and David Barboza, In China, Human Costs Are Built into an iPad, New York Times, January 25, 2012; Jack Linchuan Qiu, Working-Class Network Society: Communication Technology and the Information Have-Less in Urban China [Cambridge, MA: MIT Press, 2009], 303). [본문으로]
  48. Nicholas Mirzoeff, The Right to Look: A Counterhistory of Visuality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11), 385. [본문으로]
  49. Jean Baudrillard, The Mirror of Production (New York: Telos, 197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