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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공간적 쇠약: 팔레스타인에서의 느린 삶과 감금 자본주의 (재스비어 K. 푸아) 본문
이는 듀크대 출판사에 발행하는 계간지 『The South Atlantic Quarterly』 2021년 4월호에 실린 Jasbir K. Puar의「Spatial Debilities: Slow Life and Carceral Capitalism in Palestine」을 번역한 것이다. 주석은 오류없이 보기 위해서 PC를 통해서 보는 것을 추천드리며, 첨부된 사진들은 역자가 글의 이해를 위해 임의로 첨부하였음을 알려드린다.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미국 증권 거래소/시장이 2008년 금융위기 이래로 가장 큰 폭락세를 보였던 2018년 10월 한 주 동안에, 뉴욕시의 월 스트리트에서는 팔레스타인 예술가 할레드 자라르(Khaled Jarrar)의 퍼포먼스 작품 <판매용 피 Blood for Sale>가 상연됐다. 이 작품에서, 자라르의 피가 담긴 50개의 유리병의 가격은 미국의 상위 15개 방위산업 계약회사의 주가와 묶여있었다. 퍼포먼스에서 자라르는 어깨 끈이 달린 큰 트렁크를 들고 있었는데, 트렁크의 유리창 뒤에는 유리병들이 상점의 물건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1 한 주라는 시간, 전통적인 월 스트리트의 개장 시간인 월~금/오전 9:30~오후 4:00 동안, 궁금해하면서 놀라워하는 행인들에게 자라르는 “피를 판매합니다!”라고 외쳤다.
원주민의 땅과 흑인 노예들의 매장지 위에서, 주코티 공원에서의 월가 점령 시위와 그리 멀지 않게, 자라르가 상연한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의 정량화는 인간 피의 가치를 통해 생명의 가치, 상품으로서의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문자 그대로 보여준다. 팔레스타인인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이 탁월한 개념화는 행인들로 하여금 팔레스타인인의 피가 담긴 병 하나가 스미스&웨슨(Smith and Wesson, 미국의 총기회사-역자 추가) 주식의 한 주(株)만큼의 값―예를 들어, 그가 퍼포먼스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19.48 달러로 평가받았다―을 하는지 평가하도록 요구한다. 자라르는 매우 물질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인간 생명의 추상화와 시장 상품화의 논리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피가 담긴 10미리미터짜리 병을 들고 다니는 게 꺼려져 차라리 돈을 기부할 관객들에게 그는 말한다. “미국인으로서, 당신은 전쟁 기계를 위한 세금을 지불합니다. 당신의 정부가 전쟁 기계입니다. ... 저를 믿으세요, 당신의 손에 피가 있군요”(Weber 2018에서 인용). 또한 이 퍼포먼스는 초기에 연방 정부가 시민권 제한을 위해 미국 원주민 부족에게 부과한 체계인 블러드 퀀텀 규칙(blood quantum rules,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원주민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원주민 DNA의 인위적 기준을 만들어 일정 매칭률 이상만 법적으로 원주민의 범주에 포함시켰던 제도-역자 추가)와 공명한다. 자라르는 종종 중동, 특히 예멘에 집중하는 군사-산업 복합체에 의해 수행되는 전지구적 폭력의 무수한 형식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싶어 했지만, 그는 그가 이스라엘을 언급했을 때 일시정지 상태(pause)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신은 동정심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라면 몇몇은 표정을 바꾸고 떠나버립니다”(Weber 2018에서 인용). 자라르의 퍼포먼스는 팔레스타인인 피의 가치를 지움으로써만, 군사화의 전지구적 네트워크가 문자 그대로 팔레스타인인의 피를 흘리는 것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망각함으로써만, 우리는 군사-산업 복합체의 전지구적 폭력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운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퍼포먼스는 전지구적 폭력의 대가가 팔레스타인의 인민, 신체, 그리고 피라는 것을 가시적으로 만든다.
자라르의 명민한 프로젝트는 나의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는데, 이는 팔레스타인에서의 불구화(maiming)에 대한 나의 작업과의 공명 그리고 팔레스타인인 생명의 가치를 둘러싼 양면성을 포착하는 퍼포먼스의 방식 때문이다. 내가 『불구화할 권리 The Right to Maim』(Puar 2017)에서 논의했듯, 팔레스타인에서의 신체적 능력(capacity)과 쇠약(debility)에 대한 얼룩덜룩하고 불균등한 지표의 생산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의 부수적인 효과나 불운한 효과가 아니라, 정착-식민주의적(settler-colonial) 점령의 작동에 본질적인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 부분에서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군에 의해 벌어지는 부상(injury)의 생산―즉, 존재의 불구화―을 들여다본다. 책의 이 부분은 주로 2014년의 가자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1차 인티파다 운동과 2차 인티파다 운동(이스라엘의 정착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민중 봉기를 말한다-역자추가) 동안 서안 지구로부터 나온 중요하면서도 예비적인 데이터 또한 통합하고 있다. 2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제야 팔레스타인에서의 불구화의 깊은 역사―“역사적인 축적”(Seikaly 2016)―을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진화하는 아카이브는 산재해 있고, 불연속적이고, 널브러져 있다.
민간인의 죽음에 대한 선정적인 집중에 의해 종종 은폐되는 불구화의 비밀 관행은 2018년 3월 30일 가자에서 시작된 위대한 귀환 대행진(the Great March of Return) 동안 완전히 드러났는데, 이 때 동안 미국의 주류 미디어는 (내가 가늠할 수 있는 한에서는) 처음으로 불구화하기 위한 사격의 명백한 스펙터클에 두드러지게 초점을 맞췄다. 데모크라시 나우와 국경없는 의사회, 국제 인권 감시 기구, 그리고 다른 인권 조직들의 보고와 같이 많은 진보적인 미디어만큼이나, 워싱턴 포스트 그리고 LA 타임즈의 보도는 시위자들을 목표로 하는 저격수에 의해 발생한 수천 건의 무릎 아래 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부상의 심각함뿐 아니라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 물자와 시설의 부족 그리고 서안 지구 의료 시설로의 환자 이송 거부에 기인한 높은 신체 절단 비율에 대해 언급했다. 언론인과 의료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 역시 보도에서 초점이 맞춰졌다. 2018년 5월 15일 절정에 달했을 때, 신문은 예루 살렘을 방문한 이방카 트럼프의 사진과 가자에서 총격을 입은 시위자들의 장면을 병치했는데, 2014년 가자 포위 당시 부상자의 수는 보통은 “부수적 피해”라 불리며 민간인의 죽음의 부록으로서 항상 보도되었기 때문에, 이런 미디어 관심의 변화는 적잖게 논평할 가치가 있다.
부상당한 시위자들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또한 라시드 할리디(Rashid Khalidi)가 설명했듯(2018),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통치의 역사에서, 모든 시위자들이 테러리스트로 여겨지고 따라서 부상과 죽음의 목표가 되는 민간인에 대해 뻔뻔하게 군사력을 방출한 것이 전례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논쟁을 위해서는 Erakat 2019: 200–205를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차 인티파다부터 정밀 저격 표적의 기술적으로 업데이트된 결과까지, 국방부 장관 이츠하크 라빈(Yitzak Rabin)의 악명 높은 “부러진 뼈(broken bones)” 혹은 “뼈 부러뜨리기(break their bones)” 정책을 추적할 수 있다. 신체를 하나하나 골라 총으로 겨냥하는 리비도 경제, 즉 다른 방식에 의한 대학살은 정착민 주체성의 정동적(affective) 갱신을 산출한다. 위대한 귀환 대행진이 매주 금요일에 계속된 첫 해 동안에만, 수만 명의 시위자가 부상을 입었으며, 그 중 7천 명 이상이 하반신에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다수가 절단 수술이나 다른 수술을 기다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2년 이상이 걸리는 다중 수술을 요한다. 이 지연 기간 동안 적절한 항생제가 없다면, 슈퍼 바이러스가 증식한다(Abu-Sitta and Puar 2019). 다른 말로 하면, 부상의 순간이 있지만, 또한 불구화라는 삶의 궤도, 즉 팔레스타인 시인이자 인권 활동가 예한 브세시오(Jehan Bsesio)가 날카롭게 지적한(Abu-Sitta 2019), “미디어 사이클보다 오래 지속하는(outlasts media cycles)” 것의 진행이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런 최근의 보고들과 이전의 보고들은 이스라엘군이 어떻게 그들의 전략을 조절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감각에 기여한다. 생명을 구하고 보존하는 것이라는 인도주의적 위치를 여전히 주장하면서도 저항의 방해를 위한 수단으로 시위자들에게 장애를 가지게(disabling) 만드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라고 자칭하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벌어지는, 리사 붕갈리아(Lisa Bhungalia)(2019)가 말했던 “도덕적 폭력의 수행(performance)”의 실행(enactment)이다. 주권적인 “죽일 수 있는 권리(right to kill)” 그리고 생명정치적 프로젝트인 “살게 내버려두기(let live)”와 “죽게 내버려두기(let die)”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내가 “불구화할 권리(the right to maim)”(Puar 2017)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죽이지 않기 때문에 도덕적인 것으로 정당화되는 불구화할 권리는 느린 죽음을 거의 확실하게 만들면서 처분 가능한 신체로부터 가치를 생산하는 양식이다. 불구화는 또한 희생자-주체 생산에 대한 전략적 거부, 인권 담론에서 표명되는 “인간”이라는 판본에 대한 접근의 자제이다. 무엇이 의도적이고 무엇이 돌발적이었는지에 대한 끔찍한 질문은 부상과 죽음 사이의 연결을 사로잡는다. 예를 들어, 만약 2014년이었다면 만 명이 넘는 부상자는 보기에 눈에 띄지 않는 반면에 2천 명 이상 민간인의 죽음의 스펙타클이 장악했을 것이다. 위대한 대행진 동안 우리는 우발적인 것으로서의 불구화에서 의도적인 불구화로의 변동―우발적인 것이라는 기만을 참작할 수 없는 저격 표적―을 본다. 느린 폭력(slow violence)에 대한 롭 닉슨(Rob Nixon)의 이론화(2013)에서 더 나아간 표명으로서, 불구화할 권리는 영구적인 부상의 상태에서 인구를 유지하는 경제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생산성, 즉 생명정치의 덜 탐구된 벡터인 “죽게 내버려 두지 않기/죽게 만들지 않기(will not let die/will not make die)”로 내가 이론화한 것(Puar 2017)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벡터가 드러내는 것은 생명정치적 사유의 핵심에 있는 자유주의적 자만심인데, 이는 죽음이 반드시 생명에 대한 궁극적 공격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죽일(kill) 혹은 “죽게 만들(make die)” 주권적 권리와는 대조적으로 “살게 내버려두는 것(letting live)”은 항상 선물이라고 한다.
자라르의 비판적인 작품은 생명의 상품화 논리를 강조하고, 사실은 조롱하는데, 이 논리는 단지 죽음에 의해서만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물론, 우리는 인간 생명의 가치가 상품화되고 불균등하게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을 안다―죽지 않으려는(not to die) 인간의 의지와 능력 그리고 생존하기 위한 그런 결정을 무기화하는 생명정치적 국가의 능력에 의해서도 점점 추동되고 있다. 사야크 발렌시아(Sayek Valencia)는 『고어 자본주의 Gore Capitalism』(2018: 21) 에서 하이퍼소비지상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에서 “폭력 그 자체”(162)와 “신체의 파괴 그 자체가 생산물 혹은 상품이 된다.”(20)고 지적하며, “죽음은 현존하는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죽음뿐만 아니라 죽음과 부상 사이의 경첩이 중요한 계산의 일부이며, 이 계산을 통한 폭력 그 자체가 상품이라는 주장 그리고 이런 고문 받고 훼손된 신체가 처분되는 대신에 이익을 위해 재활용된다는 주장을 발렌시아의 주장에 덧붙이고 싶다. 그러므로 필수적인 것은 생명정치적인 국가가 죽으라는 요구, 즉 다른 “가장 수익성 있는 사업”(21)에 직면해서 어떻게 죽지 않으려는 결정과 의지를 무기화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극단적 착취와 삶의 기회의 지속적인 생명정치적 분해라는 맥락에서, 혹은 “삶을 일구어나가려는(make life)” 벡터의 협소화라는 맥락에서, 우리는 어떤 (당신의) 생명이 가치 있는가와 어떤 (당신의) 죽음이 가치 있는가뿐만 아니라 어떤 (당신의) 죽지-않음이 가치 있는지 또한 물어야만 한다. 이런 재공식화는 그 핵심에서 죽음보다는 생명이라고 가정된, 본질적 가치라는 자유주의적 자만 그리고 이런 자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도주의적이고 생명정치적인 알리바이, 환상, 과잉을 드러낸다.
어떤 당신의 죽지-않음이 가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어떤 의미에서는 재난 자본주의 그리고 감옥 폐지론자이자 학자인 재키 왕(Jackie Wang)이 말한 “감금 자본주의(carceral capitalism)”(2018) 사이의 관계에 살을 붙이는 것을 통해서 잠정적으로 매핑될 수 있다. 첫 번째 공식화에서는 인프라구조적이고 육체적인 쇠약화(debilitation)와, 쇠약화하지 않으면 처분 가능한 인구로부터 가치를 매기고 이익을 얻는 이익-산출의 회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서, 재난은 살아남는 것을 의미한다. 가자에서 말 그대로의 불구화의 사례는 정착 식민주의 국가의 수행적 반복으로서의 스펙타클한 폭력의 형식 그리고 보호받는 재산으로서의 이스라엘인 생명의 가치에 의존하는 재난 자본주의의 인도주의적 경제의 일부이다. 이것은 가자에서의 위대한 귀환 대행진 동안의 시위자들의 믿을 수 없는 육체적 강인함을 축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위험이 어떻게 가치로 변화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니힐 팔 싱(Nikhil Pal Singh)이 설명하듯(2014: 1097), 가치 실현은 이중적이며, 두 방식 모두 “그들[이 경우에서는, 생명정치적 국가]이 이런 관계에서 금전상의 이득을 취하는가.”에 의존하지 않는다. 치안(policing)의 공적 폭력에 대한 싱의 논의를 따라 가보면, 우리는 또한 신체가 소모용일뿐만 아니라 신체가 보호받을 가치 있는 것인 곳에서도 “대중을 가르치는”(1097) “본보기의 스펙타클(exemplary spectacles)”에 의해 재난 자본주의가 추동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가자 사례에서 재난 자본주의의 가장 효과적인 요소 중 하나는 재난 자본주의가 글로벌한 관심사를 해방 운동의 활력과 엄청난 중요도에서 다친 인구의 의료적 필요로 옮겨 놓는 것이다(Abu Salim 2016). 이런 인도주의적 위기의 스펙타클은 불구화를 (새로운? 통용되는? 이전에 가라앉은?) 주권 권력의 정점으로 효과적으로 재가하면서, 죽이지 않기, 혹은 죽이기뿐만 아니라 불구화까지 규범화한다. 이는 또한 가자 거주인들의 신체가 오직 부상당한 신체로서만 가치 있다는 것을 전달한다.
만약 재난 자본주의가 본보기의 스펙타클에 의존한다면, 감금 자본주의는 공간을 불균등하게 가치 평가/절하하는 “일상적 감시(quotidian surveillance)”(Singh 2014: 1097)를 통해 가치를 창조한다. 왕(2018)은 부채와 채무의 경제를 스펙타클한 것에 의존하기보다는 시간적인 개방과 폐제를 통해 성취되는 공간적 인클로저의 형식을 생산하는 것으로 상정한다. 명확히 하자. 이 프레임은 권력의 규율적 양식 내부에 절합되는 감금 인클로저의 많은 형태들―감옥, 검문소, 안보 벽(security wall)―을 모호하게 만들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인클로저는 땅의 사유화로 이해된다. 하지만, 왕은 시간을 포괄하기 위해 인클로저의 개념을 확장한다. 왕은, 시간이 어떻게 사는지 혹은 어떻게 살 수 있는지의 엄격한 경계를 그리는 삶의 조건과 궤도에 묶인 인구를 부채 경제가 창조하는 한에서, 이동성(mobility)이 시간을 공간적 인클로저의 형식으로 요청하는 처벌 장치로서의 부채의 이용을 통해 감시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몇몇 사례들은 관리비 구조, 체납 그리고 법정 기일 불출석에 부과되는 과도한 벌금, 학자금 대출, 정차되어 나중에 체포될까하는 두려움에 집이나 특정 지역에 사람들을 축적시키고 붙박게 하는 모든 비용을 포함한다. 왕의 작업에서 내가 이해한 것은, 감금 자본주의 분석은 재난 자본주의의 스펙타클을 만드는 능력을 특권화하지 말고, 대신 재난 자본주의에 앞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도주의적인 어구로 가치를 누적하기 위해 지워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왕은 “사람들로부터 추출해내기 위해 그들을 산 채로 남겨둬야만 하는” 착취와 “현재의 인종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제한하고 죽여야만 하는”(80) 처분 가능성(disposability)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우리는 아마 이를 다른 방법으로는 생명정치와 죽음정치(necropolitics) 간의 상호작용으로 표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재난 자본주의가 비재난(nondisaster)과의 관련 하에 구축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스펙타클하지 않은 느린 죽음, 재활용되기보단 남겨지게 될 사람들의 처분 가능성을 확보하며 감금 자본주의의 협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재난-감금의 관계가 의미하는 것은 가자가 탁월한 인도주의적 구조(rescue)의 대상인 반면, 일상적인 쇠약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안 지구의 일부 지역 또한 상황은 악화되고 있으며, 특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상대적으로 공간적 거리가 멀고 제한된 난민 캠프에서도 그렇다. 3 그렇게 “재난”은 일부 인구(그리고 사건)에 할당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도착적 인식이다. 나는 처분 가능한 인구로부터 추출/착취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인구들을 처분 가능하게 만들어내는 것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해 재난 자본주의가 어떻게 처분 가능한 인구를 에워싸는지에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해, 가자에서 지난 10년 동안 가속화된 “파괴의 순환”과 재투자 같은 경우에(Feldman 2016: 99; 또는 Roy 1999를 보라), 재난 자본주의 그 자체의 기제는, 다른 인구의 처분 가능성을 위한 조건, 실은 재난의 결과로 발생하는 처분 가능성의 바로 그 토대를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이용된다. 가자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전선이 되며, 이런 개입 자체는 가자 거주민을 노동자가 아닌 이용자와 소비자로 살아가게 한다(남성의 실업률은 70%까지 높아질 수 있다). 결합된 재난-감금 분석은 무엇이 재난이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위치시키는지에 대한 재절합을 가능하게 만든다(한 가지 빠른 예로, 카슈미르Kashmir 지역과 관련 지어 가자를 탈-예외화하는 것). 엄밀한 의미의 재난보다 조건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더라도, 조건을 동일하게 생산하는 재난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는 단지 재난의 구축이 우리의 주목을 구속하는 것뿐만 아니라 느린 죽음과 타자의 포기와 맞물려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상황이 다른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와 체계화라는 변수를 따라서 애초에 그런 차이를 확립하는 자본주의의 전반적 구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나는 처분 가능한 신체에 있어서의 가치 창조의 두 형식을 경유해서 재난-감금 프레임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것이다. 첫째로, 차등적인 장애 이동성(differential disability mobilities)의 생산. 둘째로, 이와 관련된 공간적 인클로저로서의 느린 삶.
차등적인 이동성
2017년 12월 15일 가자에서, 이브라힘 아부 튀라예(Ibrahim Abu Thurayeh)가 이스라엘 방위군(IDF, Israeli Defense Forces)에 의해 머리에 총격을 입고 죽었다. 미국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2017년 12월 4일의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저항한 29살의 아부 튀라예는 휠체어 사용자이자 절단 장애인이었다(Maza 2017). 그의 다리는 2008년에 절단되었는데, 그때 그는 가자 국경에서의 집회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팔레스타인 국기로 교체하던 중에 이스라엘 헬리콥터에 의해 총격을 입었다(Maza 2017). 가자의 유명한 자유 투사이자 두 절단된 허벅지로 우뚝 서 시위의 전선에서 비무장 상태로 있던 아부 튀라예의 이미지는 입소문을 타면서 미디어 스펙터클을 산출했다.
도덕적 분노는 장애를 가진 시위자들에 대한 부상입히기(injuring)에 빠르게 축적되며, 부지불식간에 장애를 가진 시위자들을 저항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유순한 존재로 생산한다. 사실, 나는 도덕적 분노가 애초에 부상의 목표가 되는 시위자들이라는 실제적인 사실보단 스펙터클에 더 빠르게 축적된다고 제안한다. 분노에 대한 이런 비장애중심주의적(ableist) 번역을 뒷받침하는 것은, 치유할 수 없는 부상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 영구적 장애(permanent disability)인 곳, 즉 쇠약화의 장(場)에 존재하는, 다가올 장애(the disability to come)와 장애되기(becoming disabled)를 비장애 신체의(able-bodied) 저항자들이 직면한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도덕적 분노가 비축되는 바로 그 장애를 가진 신체의 생산, 혹은 정착-식민적 점령을 유지시키는 이런 생산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보통은 적어 보인다. 이런 비대칭은 간단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어떻게 장애인 권리의 플랫폼과 불구화할 권리 간의 모순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요컨대, 도덕적 분노의 불균등한 표현은 아이러니하게도, 애초에 어떻게 장애를 가진 신체가 존재하게 되는지를 흐리게 만든다. 아부 튀라예의 인생사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병사들에 의해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장애를 가지게 만드는 저격(눈, 팔, 무릎을 쏘는 것)과 장애인을 향한 저격, 장애인에 대한 상해와 살상의 이런 고유한 교차성을 재현한다. 4 이런 교차성이 제안하는 것은 장애가 항상 되기(becoming)의 근접한(proximate) 상태라는 것이다. 다가올 장애, 즉 팔레스타인 인구의 많은 부분들을 사로잡는 장애의 끊임없는 생산은 죽지 않으면 쇠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점령에 저항한 수십 년 동안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노화나 노쇠로부터 얻게 되는 장애와는 매우 다르게, 비장애 신체에서 장애를 가진 신체로의 항상 임박한 “전환”은 장애와 비장애의 자기/타자 모델보다는, 근접하면서도 단계적인(gradated) 다양한 능력과 쇠약을 생산한다.
장애에 대한 관계적인 근접성―내가 “쇠약의 위치에 있는”(Puar 2017, xiv) 것이라 부른 것―의 필연적인 귀결의 측면은 점령의 주요한 감금 논리 중 하나, 즉 셀레스트 랭건(Celeste Langan)이 “이동성 장애(mobility disability)”(2001)라고 부른 것의 생산에 반영된다. 그녀가 이동성 장애를 이론화하기 위해 출발하는 지점은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 1973: 58)이다.
모든 자유로운 행위(action)는 함께 작동하는 두 가지 원인에 의해 생산된다. 하나는 정신적인 것, 즉 행동(act)을 결정하는 자유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신체적인 것, 즉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이다. 내가 무언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내가 그곳에 갈 것을 의지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내 발이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만약 달리려는 의지가 마비되거나 활동적인 인간이 행위하지 않는다면, 둘 모두 그들이 있는 곳에 머물게 될 것이다. (루소 <사회계약론>)
마비된(paralytic) 그리고 활동적인(active)이라는 용어를 고쳐 쓰면서, 랭건은 루소가 “달리길 워하는 불구자(cripple)와 행위하지 않는 비장애 신체의 인간”이라는 유사한 상태를 확신했다고 언급한다(2001: 459). 그녀는 이렇게 쓴다. “이동성 장애를 사유하는 것은 움직임(motion), 그리고 아마도 요망되는 목표(desired ends)에 대한 속도와 범위의 규범들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다. ... 이런 제약들을 고려하는 것은 구축된 환경―사회적 관행과 물질적 인프라구조―이, 움직이고 싶어 하는 ‘불구자’와 보행 가능한 사람 간의 차이를 축소시키는 이동성 장애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이동성에 대한 학문적 문헌의 두 가지 다른 집합을 한데 모으면, 이런 차이들과 이것들이 어떻게 축소될 수 있는지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다. 점령에 있어서 이동성 제약의 중심성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유창하게 설명되어 왔지만, 이런 연구들은 이동성의 잠재력을 가지면서도, 주로 감시, 봉쇄, 그리고 제약의 인프라구조적이고, 건축적이고, 행정적인 장치를 통한 차후의 방해를 겪는다고 가정된 비장애 신체를 참조적 기본으로 삼는다. 이동성 장애를 집합적 처벌 형식으로서의 이동 조절(movement modulation)에 대한 보편화된 사회적 조건보다는 개인적 조건으로 부지불식간에 강화하면서, 달랐더라면 빛났을 이 학문은 다양한 양식들을 탐구하지 않는데, 이 양식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은 손상(impairment)의 형태로 그들의 신체에 문자 그대로 실현되는 이동성의 억제 논리를 가지게 된다(Kotef 2015). 이와는 역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장애에 대한 부상하는 연구와 정책 문헌은 대체로 집에 묶인(homebound) 인구와 일, 교육, 그리고 통합에의 접근 증진에 집중해 왔다(Eide 2006; Jarar 2009; Palestinian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and Ministry of Social Affairs 2011). 다른 팔레스타인 인구들에게 이런 접근의 형식이 가능하다는 암묵적 가정을 기본으로 하는 이런 작업은 장애 인권의 역량 증진 프레임을 통해 집에 묶인 사람들을 비장애 신체를 가진 팔레스타인 인구에 투사하면서, 사회의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많은 팔레스타인 지구가 길을 찾아나가야만 하는 이동성의 인클로저와 장애물의 복잡한 형식들을 회피한다(Abu Nahleh 2009; Al Qaddi 2003). 이런 깊은 간극은 위와 같은 프레임의 전지구적 보편주의와 적합성을 유지시키며, 이스라엘 통치에 대한 국제적 행위자들의 묵인을 합리화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전지구적 장애 인권의 프레임은 장애인으로 경계 지어진 사람들 그리고 다시 랭건의 언어로 돌아가자면, “보행 가능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한 쇠약의 전반적 영역 간의 이런 연결들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어느 정도 우위를 차지한다. 5
랭건이 강조하는 축소된 차이는 공간적 제한을 통해 신체를 땅에 붙박는(ground) 연속체로서의 감금 국가에 본질적이다. 6 인구를 가로지르는, 장애/비장애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이동성 손상의 생산은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집합적 처벌의 형식이다. 7 장애/비장애라는 신체적 범주화에 관계없이, 전형적으로 “이동성 장애”로 불리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이동성에 일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동성 손상의 단계적 변화와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진화하는, 명쾌한 장애 개념을 반영하고, 차등적 이동성을 집합적 처벌의 형식으로 프레이밍함으로써, 우리는 장애의 범주화가 의존하는 자기/타자 이분화를 퇴적시키기보다는 쇠약화의 단계적 변화를 통해 개체를 연결하는 연대의 새로운 선을 잠재적으로 상상하고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자기-타자 정체성 위치를 유지하는 장애의 틀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기초이자, 인정(recognition)의 장애 인권 프레임에 의해 영속화된 “동맹” 형성을 저물게 할 수 있는 더 깊은 연대가 번성할 수 있는 촉진의 통로이다. “축소된 차이”를 진지하게 사유하는 것은 장애를 탈식민화하는 과정의 중요한 입구이다.
랭건의 이동성 장애라는 개념은 쇠약화하는 인프라구조가 어떻게 비장애 신체를 다양한 장애를 가진 신체로 전환하는지 표지한다. 이런 단계적 변화는 움직일 수 있는 이스라엘인과 움직일 수 없는 팔레스타인인 간의 분할에 달려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신체가 옆에 있는 신체와는 약간 다른 지위를 가지는 것과 같이 차등적이면서도 근접한 이동성 능력의 복잡한 장치에 달려 있는 점령의 논리에 내재되어 있다. 이는 예를 들어, 48(이스라엘의 정착-식민적 상태를 말하는 용어),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 서안 지구에서 사는 사람들과 디아스포라/들 간의 “차등적인 특권과 처벌의 세심한 분배”(Li 2016: 193)를 강조한다. 랭건이 주장한 것처럼, “이동성 장애는 ... 운동의 속도와 범위의 규범에 대한 것”이라면, 이스라엘인의 이동성과 팔레스타인인의 부동성(immobility) 간의 양극화, 비장애 신체를 가진 팔레스타인인과 집에 묶여 이동성-장애를 겪게 된 팔레스타인인 간의 양극화는 분석적 압력을 지속시킬 수 없다. 만약 속도(speed and pace)가 장애 이동성의 범위, 질, 양, 그리고 심각성을 측정한다면, 이동성은 달리 생각되어야 한다. 비장애 신체의 상실된 능력으로서의 속도, “움직임의 범위(들)”, 그리고 그것들의 눈금, 즉 속도와 움직임의 다른 종류와 유형들의 창조가 사회적 통제의 모든 형태들이다.
속도와 움직임의 이런 조절(modulation)의 물질화(materialization)는 무엇인가? 랭건의 논의로 마지막으로 짧게 돌아가 보면, 이것의 “요망되는 목표(desired end)”는 무엇인가? 신체의 움직임의 속도와 범위가 차등적으로 가능해지고 억제된다면, 이동성은 신체의 개인적 자산, 즉 자기의 소유물(possession)이다.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계몽주의 프레임을 통한 이동성의 생산은 어떠한 신체도 그 옆에 있는 신체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불일치, 불신, 그리고 선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활용된다. 투픽 하다드(Toufic Haddad)가 묘사했듯 (2016: 110), 오슬로 협정 이후의(post-Oslo) “봉쇄조치(closure)”라는 기술에는 서안 지구, 계급 관계, 개인들을 파편화하려는 의도가 있다. 한 신체가 할 수 없는 것과 다른 신체는 할 수 있는 것 간의 일별은 생산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움직임을 동결시키는 것은 분열시키는 점령의 정점이 아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이동성 장애에 대한 의식을 조건 짓는 것은 잠재적인 이동성의 성좌이다. 이동성 장애의 집합을 만들려는 명백한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는 여기서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비)이동성의 다양한 형식에 대한 경험의 누적 효과에 관심이 있다.
특히 전지구적인 인권 체제가 장애를 보호받으며 잠재적으로는 자율적인 상태로 선전하는 것과 관련해서(Ben-Moshe et al. 2007; Jaffee 2016), 만약 차등적 이동성이 무엇이 장애인지를 바꿔 놓는다면, 연대의 다른 선은, 즉 장애를 가진 신체와의 동일시를 통해/너머 부동화(immobilization)의 집합적 처벌을 전경에 두는 연대는 비장애/장애 이분법의 분해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동성이 불균등하게 인질로 잡혀 있는 극단적 제한의 맥락에서, 장애뿐만 아니라 이동성의 재규정된, 그리고 새로운 형식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동(movement)의 살 만한 형식을 세공하기 위해, 이동에 대한 제약을 뒤집기 위해, 무엇이 이동인지에 대해 완전히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서발턴의 능력으로부터 유래하는 어떤 종류의 대안들이 실행되는가?(Rai 2019를 보라)
팔레스타인의 맥락에서, 이동성 장애를 낳는 외부적 제약은 다양한 장애물과 모든 종류의 이동을 조절하는 것을 포함한다. 검문소(Tawil-Souri 2011). 여행을 멈추고 사전 제약하는 행정 관료적 장치, 노동에서의 이동성, 개발과 기업가적 벤처 사업, 그리고 거주지를 이동시키고 바꾸는 능력, 여행과 건축 허가 신청을 위한 바로크식 절차, 우편배달과 같은 공공 서비스의 부재, 고지서를 납부할 수 있는 인프라구조의 결핍(Ophir et al. 2009; Tawil-Souri 2011, 2012; Berda 2017). 이동의 순환을 분할하는 풍경과 (고속도로, 터널과 같은) 교통 인프라구조, 그리고 (대역폭 규제와 보류 그리고 드론이 거주하는 항공 경관을 경유하는 수직성의 다른 레이어를 포함하는) 수직적 공간 형식들의 조작된 생산과 파괴(Weizman 2002, 2012). 불확실한 정치적 긴장완화의 어구를 통한 시간적 근대성의 보류. 팔레스타인 남성뿐 아니라 친족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반복적 투옥 관행. 신체를 집에 붙박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무릎, 눈, 그리고 다른 신체의 일부를 향한 저격을 통해 이동성 장애를 말 그대로 생산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 시작하고자 하는 곳은, 해결의 거부를 통한 시간적 근대성의 보류, 비규정된 것(the indefinite)의 공간에서의 유예, 그리고 느린 삶의 시간적 등록을 통한 이동성 장애의 생산이다.
느린 삶
이스라엘의 건축가이자 사회 이론가인 에얄 와이즈만(Eyal Weizman)은 “공간은 정치적인 가소물(a political plastic)이다.”라고 말한다(2017: 187). “당신이 공간을 정치적 가소물로 이해하자마자, 구축과 해체 사이의 차이는 없어진다. 이는 단지 공간의 재구성(reorganization)일뿐이다.” 팔레스타인에서 공간의 재구성은 일상적인 것의 규모에서 상당한 속도를 동반하며 일어난다. 그리고 이 속도는 종종 그것이 훼손하고 있는 형식의 심원한 장기지속에 역행한다. 비공식적인 검문소가 나타났다 사라지며, 집과 일터 사이의 통행로가 중단되거나 재설정된다. 정착촌 건설은 신속하게 승인되고 개시된다. 가옥의 파괴는 하루아침에 가정생활의 혈통의 증거를 파괴한다. 수십 년 동안 땅 위에 있던 올리브 나무들은 약탈되거나 해를 입는다. 이 목록은 계속 될 수 있다. 하지만 파괴의 이런 (빠른-역자 추가) 형태들과는 대조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삶은 느려지고 있고, 느린 삶의 한 판본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느린 죽음이라는 생각은 죽음과의 관계에 집중하지만, 느린 죽음의 느린(slow) 측면을 적절히 이론화하진 않는다. 사실 팔레스타인인 삶의 경우에 느린 죽음 자체는 삶의 느려짐(둔화, slowing down)으로 문자화된다. 느림의 시간성은 10~2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데 몇 시간은 가뿐히 걸릴 수 있는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체계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 그들의 상업행위, 영구적이고 산발적이며 “이곳저곳 나타나는(flying)" 검문소(서안 지구 자체 내부에 있는 많은 것들)의 산물, 바리케이드, 아파르트헤이트 벽, 전자 울타리, 분리된 도로와 고속도로를 둔화시킨다. 팔레스타인 자체는 커짐(bigger)―왜냐하면 어디로 가든 오래 걸리기 때문에―과 동시에, 허가증과 신분증 없이는 구역들 사이를 이동하기 어려운 A, B, 그리고 C 구역의 세계에서 필요 이상으로 통행이 힘들어짐에 따라 작아진다(smaller). 이동은 질식된다. 거리는 이동성 손상을 동반한 전체 인구를 만들기 위해서 늘어나고 조작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자리에 묶이고 멀리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공간은 줄어든다. 시공간 압축(space-time compression)과 시간에 의한 공간의 소멸에 대한 가속주의자들의 이론화와는 달리, 증대된 공간적 차이는 시간적 동시성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 8 오히려, 동시성은 보류된다. 시간 자체가 인질로 잡혔다.
이것이 느린 죽음의 느린 측면이다. 느린 죽음은 정말로 느린 삶 또한 수반할 수 있다. 이 삶은 다른 속도들 그리고 속도와 공간의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교정을 요한다. 점령은 부분적으로는 시간성에 대한 통제를 균형맞춤으로써, 즉 속도에 대한 접근, 접촉 형식의 직접성, 그리고 근대성에서 요망되며 상품, 아이디어, 신체의 유통에 필수적인 시공간 압축을 폐제하거나 유예함으로써 작동한다. 이런 질식적(asphixiatory) 통제 사회는 점진하는 속도의 서사에서 알고리즘적이고, 평행적이고, 분산되고, 네트워크화된 시간 형식으로 옮겨 간다. 이는 항상-연결됨의 이상과는 대조적으로 연결성과 느린 감쇠 간의 유예를 통해 작동한다. 셉 프랭클린(Seb Franklin)이 설명하듯(2015: 84), 이런 유예에 의해서, “부동성, 고정성, 그리고 소통 채널로부터의 단절은 일탈적이거나 병리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그래서 재현의 회로로부터의 축출 그리고 배제로 이어진다.”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의성과 불확실성을 추동하는 유예와 함께 비규정된 것의 시간적 불안정성에서 살며, 그렇기 때문에 미래뿐 아니라 개방된 미래로 이어지는 현재의 두터운 잠재성마저 빼앗겨 버린다. 비규정된 것, 기다림 그리고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의 유예된 상태는 다세대간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해를 가한다. 비규정된 것의 불확정성은 지시된 미래의 확실성에 의해서만 대응된다, 그러므로 시간은 권력의 측정기다. 이것은 물리적 인클로저가 취하는 한 가지 형태다. 공간을 통한 시간의 저지(cordoning)는 “시간 내부에 옴짝달싹 못하게”(Lagerquist 2008) 되는 감각만큼이나, 식민 통치의 작동에 고유한, 전반적인 “자신의 감각 기능에 대한 관할권의 결여”(Schuller 2018: 74)에 기여한다. 만약 생명정치가 부분적으로는 “시간성의 인종화”를 통해 기능한다면, 이런 과정은 시간적 차등화(temporal differentiation)의 몇몇 양식들―미래성을 유보시키기, 둔화된 삶 외에는 아무것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문명 자체의 과거 내부에서”(Schuller 2018: 58) 신체를 부동화하기―을 수반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귀속을 강요한다.
팔레스타인 연구 학자 줄리 피트(Julie Peteet)는 비노동 시간(nonlabor time)의 추출을 “시간 강탈(stealing time)”이라 불렀다(2008).
그렇게 시간은 땅이나 물처럼, 이스라엘이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인구로부터 전용하는 다른 상품이 되어간다. 1967년의 서안 지구와 가자 점령 이후에, 원주민의 시간은 노동의 추출을 위해 전용되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전지구적인 노동 시장으로 눈을 돌림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손을 뗐지만, 무수한 강요된 기다림의 전략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의 시간을 훔쳐 왔다.(줄리 피트)
이 묘사에서, 우리는 가용한 비노동 시간의 고갈로 이어지는 가치 추출의 원천으로서의 노동하는 신체, 즉 산 노동(living labor)이라고 이론화되어 왔던 것에서 이스라엘 국가를 위한 점령의 가치를 확보해주는 상품으로서의 시간의 추출에 이르는 하나의 움직임(oscillation)에 대해 의식하게 된다. 산 노동이라는 첫 번째 사례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하듯이, 시간의 추출은 연결성, 공통화, 집단적 저항의 형식이 좌절되는 매일매일의 병참학에 묶인, 고갈되어서 유순한 인구를 생산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의 추출은 피식민지에서 식민지로, 남반구에서 북반구로(우리는 아마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북/남” 관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생기적 에너지”나 “삶을 생산하는 활기의 본질”(Vora 2015: 3)을 이전시키는 것으로 기능한다. 이 추출은 잠재력을 위해 신체를 파냈던 기나긴 식민적 역사를 요약한다.
하지만, 추출의 두 번째 양식, 상품으로서의 시간의 추출은 정동(affect)을 노동하는 신체의 특성으로 한계 짓고 정동 노동(affective labor)을 비물질적이고, 지적이고, 감정적이고, 소통적이고, 측정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하는 정동 노동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대조적으로, 파트리시아 클로흐(Patricia Clough) 등은 신체들 사이뿐 아니라 또한 물질의 규모 간, 즉 하위개체적(subindividual) 수준에서의 잠재성들의 이전(transfer)과 순환으로서의 정동에 초점을 맞춘다(2007: 62). 그들은 노동자가 가진 정동의 추상화를 그들이 “정동-자체(affect-itself)”라 부른 것으로 설명한다. “자본은 인간의 정동을 정동-자체로 추상화함으로써 투자를 위한 영역과 정동의 축적에 착수한다. 노동자의 신체뿐 아니라, 노동이 [자기 폐쇄적이고] 자기생산적인(autopoietic) 유기체로 간주되는 것이 정동-자체이다.” 하나의 물질적 형태로서, 물질로서, 정동-자체는 개별적 신체의 실제적 수행으로부터 추상된다. 사실, 이는 어떤 한 신체가 아니라 하위개체적 능력의 집합으로부터 발하는 것으로 위치지어진다. 정동-자체는 강도, 육체적 에너지, 그리고 점령의 특질을 재조직하기 위해 노동한다. 정동은 그러므로 신체들 사이에서 교환되고 전달되는 어떤 것일 뿐 아니라, 통제의 양식만큼이나 통제의 대상이기도 하다. 정동-자체는 일반적으로는 스피노자에게서 기인한, 점차 배포되는 동어반복, 즉 정동은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능력”(Massumi 1990)이라는 것에 구속되지 않는다. 생명정치는 정동의 가정된 호혜성을 파열시키는 작업이며, 내가 어디선가 “인종적 존재론의 지리정치”(Puar 2017: 55)라 부른 것을 나타낸다. 이런 공식의 공상적 호혜성 내부에서, 영향받은 신체가 똑같은 힘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장면은 생명정치적인 분류와 인구 관리의 작업이 번성하는 곳이다. 정동-자체를 생각함에 있어 결정적인 것은 정동의 부인, 유보, 그리고 비대칭적인 재분배가 예속의 형식이며, 따라서 점령에 대한 봉사에 힘쓴다는 것이다. 규모와 물질의 비인간주의―땅, 생태계, 그리고 생명과 비생명의 생명정치를 포함할 비인간주의(Povinelli 2016)―에 대한 클로흐 등의 개입(2007) 그리고 착취의 생산력으로서의 정동적 다중방향성의 유보 사이에서, 정동 노동은 상당히 복잡해진다. 정동 노동은 더 정확하게는 정동의 노동으로서, 즉 신체성(corporeality)의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지향의 (재)창조에 봉사하는 노동으로 사유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떻게 느림으로부터 가치가 추출되는가? 검문소의 역할을 한 사례로 취급해보자. 레마 하마미(Rema Hammami)는 이렇게 쓰고 있다(2015: 4–5).
검문소는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성을 완전히 멈추기 위해서 [혹은]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을 정례화하기 위해서 기능하지 않는다. … 침투성의 네트워크는 이동성의 일상적 경험을 임의적이고, 혼란스럽고, 불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 작동한다. … 결과들보다는, 불확실성의 항구적 상태가 검문소가 예시하고 생산하는, 이스라엘의 주권적 폭력의 바로 그 논리이다.
이 “불확실성의 항구적 상태”는 차등적 이동성의 감금 논리와 공간을 통한 시간 둘레치기(circumscribing)의 도가니이다. 검문소는 사람이 제시간에 일터에 도착하는 것을 결코 확신하지 못하게 한다. 일터에 도착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은 일터에 도착하기 위한 노동을 증가시킨다. 검문소는 시간의 강도화를 생산하는 만큼이나 노동 시간을 정동적으로 연장시킨다. 제시간에 일터에 도착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은 더 많은 비합법적 정착을 위해 땅에서 사람들을 내쫓는 이주 패턴을 생산한다. 사람들은 결코 일터에 있지 않겠지만, 이는 비물질 노동 이론이 주창하는 방식, 즉 사무실과 그 너머 간의 경계의 흐림을 통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노동하는 신체와 그것의 산출물의 윤곽 너머의 물질적 노동의 연장에 대한 것이다. 검문소가 신체의 행위를 억제하고 생산적인 노동에 필요한 시간을 연장시킨다면, 불확실성의 항구적 상태는 정동의 작업, 즉 시간과 공간, 이동 자체에 대한 감각의 재형성이다. 프랭클린이 논의했듯(2015: 26), 노동하는 신체 너머의 물질적 노동의 연장은 두 가지를 수반한다. “노동 과정의 이산화(discretization)”는 차이 나는 신체적 잠재력을 프랙탈화하며, 그 부분들은 노동하는 신체 전부보다도 더 “영구적 화폐화”를 위해 이용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런 영구적 화폐화는 “명목상 노동 시간으로 따로 떼어두는 이런 시간들”로 괄호칠 수 없는 가치화의 과정이다. 검문소에 줄 서 있는 신체들은 그들의 비노동이 노동 시간의 재생산에 완전히 묶여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이런 분할이(비노동/노동-역자 추가) 신체의 감정적, 인식적, 생리적 능력의 프랙탈화를 통해서 점령된 지각장과 감각 중추 그리고 이동의 지평의 항구적 조절의 쪽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점령의 이익에 기여한다. 이는 단지 신체가 너무 피로해져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항구적 상태”의 경험이 존재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불확실성이 검문소의 결과가 아니라 검문소의 논리라는 하마미의 기민한 지적과 유사하다. 자본주의에 의해 인질로 잡힌 것은 느림 자체가 아니다. 사실, 느림이 포획인 만큼 속도도 포획이다. 오히려, 속도와 느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끝없는 교정이 시간성의 무기화의 일부이다.
검문소를 통과하는 신체가 점점 단순히 노동하기 위해 노동하고 또한 정동적으로 추출되는 팔레스타인의 맥락에서, 노동의 시간은 연장되고, 또한 내가 클로흐 등을 따라서(2007) “시간-자체(time-itself)”라 부를 것을 추출하며, 시간은 노동하는 신체로부터 강탈된다. 정동-자체와 시간-자체 간의 유추를 만듦에 있어서, 피트의 ‘시간 강탈’이 노동하기 위한 노동에서 상실되는 하루 동안의 시간들을 표지하는 반면에(2008), 나는 한계를 기입하려는 추출의 양식인 시간-자체가 신체성을 수행하면서 무엇이 운동인지, 무엇이 이동성인지, 무엇이 공간과 운동과 시간의 관계인지에 대한 심리적 혼동을 요청하며, 지각장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에 주목한다.
시간-자체는 “신체” 혹은 노동하는 물질의 형태이자 또한 동시에 정동적 상품이기도 한데, 이 상품은 피점령자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점령 그 자체 그리고 그 결과인 점령의 이익의 일부―금전적 측면보다는 가치 평가의 측면―에 의해서도 생산된다. 이때, 시간-자체는 “인간 신체의 속박됨(bounded-ness)” 혹은 “닫힌계”인 “유기체로서의 신체”에 구애받지 않는 “일반화된 물질”이다(Clough et al. 2007: 65, 62). 그래서, 노동력은 노동하는 신체에만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복수적인 규모들에 배치된다. 그 중 하나는 정동-자체로, 이는 개체(individual)가 아니라 가분체(dividual)에 영향을 미치는 “지각적 상태, 욕동, 욕망”(Franklin 2015: 19)으로서의 신체 내부에서 차등화된다. 다른 말―그리고 이는 추정이다―로 하면, 아마도 각각의 개별 팔레스타인인의 신체로부터의 가장 가치 있는 추출은 노동이나 노동 시간이 아니라 시간-자체―사실, 가분체의 시간인 것―이다. 가분체들의 생산은 그것이 하위개체적(subindividual)이고 준개체적(paraindividual)인 능력들을 분리함에 따라서, 신체를 은폐하거나 혹은 그 부분들이 하나의 합성물을 형성한다고 전제하지는 않는 측정 지표를 창출하는 양식이다. 가분체화는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의 가치 평가에 대한 좀 더 비스듬한 형식―즉, 스펙터클한 불구화에 의해서는 많이 추동되지 않는 것―중 하나이다.
비물질 노동, 정동 노동, 노동하는 신체, 그리고 “산 노동”에 대한 주장의 확실성에서의 이런 분열은 사실 무언가를 상기시키는데, 네페르티 X. M. 타디아르(Neferti X. M. Tadiar)가 최근의 작업에서 강력하게 예증했듯(2012), 팔레스타인에서(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만은 아닌) 강압 하에 있는 다른 개념인 “생명 자체”는 기껏해야 불균등하게 가치화되며 가치 추출의 양식은 전략적이고, 불안정하고, 변화한다. 비물질 노동에 대한 이론은 어떻게 노동과 비노동 시간의 구별, 즉 집과 사무실 간의 구별이 우리의 현존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기술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점점 흐려지는가에 대해 우리가 주목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이론들은 연결성, 동시성, 그리고 시간적 식별성과 적법성의 보류에서 실행되는 집합적 처벌의 형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리정치적인 예외주의를 반영하면서, 애초에 노동과 비노동 시간 사이의 분할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전제하고 있다. 가야트리 차크라바티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이 수십 년 전의 놀라운 작업인 “가치 문제에 대한 단상들 Scattered Speculations on the Question of Value”에서 상기시켜줬듯이(1985), 비물질 노동이라는 개념은 수면 아래에 있으며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계층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계층화는 “노동일을 가짐”이라는 가정된 특권을 불안정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정보 기술 노동자와 폐기된 마더보드 쓰레기를 닦아내는 노동에 처하게 되는 인구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도를 그린다. 그렇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은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물질 노동 이론이 제시하는 방식으로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얽힘들의 다발
느린 삶, 혹은 “느린” 것으로 권리박탈된 것들의 배치는 식민 통치의 오래된 기술이자 인지 장애를 가진 신체가 종종 비인간으로 격하되는 예와 같은 유정성(animacy)의 더 오래된 지정이다(Chen 2012; Pickens 2019). 하지만, 느림이 언제나 불가피하게 순전한 쇠약화로 포획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근대성의 순수한 속도의 힘에 대항하고 그 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느린” 운동들이 나타난 반면에, 우리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서발턴 인구의 혁신으로부터 더 많이 배운다. 팔레스타인에서, 이동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동성이 어떻게 가치평가되는지는 항상 변동 중에 있다. <잠입자들 Infiltrators>이라는 제목의 2012년 영화에서, 자라르는 아파르트헤이트 벽의 다공성에 주목한다. 이미지는 체포 당하거나 심지어는 총격을 입을 위협에 있으면서도 밤에 시멘트 구조의 특정한 이음매를 벗겨내는 팔레스타인인을 보여준다.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장면은 친척들이 만나 벽의 가득찬 구조물에서 발견된 매우 작은 간극과 틈새를 통해서 노트와 사진을 건네는 장면이다. 이런 상호작용, 즉 반대편에 현존의 신호를 보내는 단서에 귀 기울이고, 수취인에게 도달했으면 하는 희망 속에서 세심하게 접힌 종이를 조심조심 틈새에 넣는 이런 상호작용의 온유함, 이런 친밀성은 느린 삶의 집단화를 반영한다(또한 Piepzna-Samarasinha 2018를 보라). 연결성의 가치는 점령의 총체화를 넘어서며, 이동성 장애의 스펙트럼은 접근성, 거처, 그리고 심지어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한 급진적으로 다른(북반구의 인권 모델과는 다른) 관념에 영감을 불어 넣는다. 국경 횡단, 검문소, 금지된 고속도로가 대부분의 인구에게 이동성에 대한 장애물을 만들어내는 팔레스타인에서, 공동으로 크라우드 소싱된 접근성 지도는 다른 원자가를 띤다. 정신적 도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개인적 커뮤니케이션, 라디오 뉴스, 길의 개방과 폐쇄, 검문소에서의 지연, 이스라엘 군대와 정착민들과의 폭력적 마주침이 있었던 장소들을 등록하는 택시 기사와 버스 기사에 의해 공동으로 창조되고 끊임없이 개정된다. 이동성의 내비게이션은 정치적 집결과 분리할 수 없으며, 이 경우에는 대중교통이 저항적 집결의 한 형태인 것이다(Griffen 2015; Sadik 2011를 보라).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에 공예품이자 수출품으로서 발전된 짧은 가자의 역사는 믿기 힘든 포위의 한계 속에서 생산되었다. 타이핑, 그리고 이상적으로는 출판을 위해 손으로 작성되고 “밀반출된” 가자의 짧은 역사는 시간과 고독에 대한 유럽의 작가적 강조가 아니라 봉쇄와 밀집된 근접성의 공생(conviviality)으로부터 등장한 형식의 혁신을 반영한다(Abu Saif 2014: ix–x).
이런 사례들과 다른 많은 사례들에서 느림은 근대성의 폐제 또는 연결성의 쇠약화나 연결성에 대한 장애물을 표지하지 않는다. 시간성의 집단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시간 통제 기술의 포화를 과잉결정하지도 않고 탈식민화와 정의의 문제를 포함할지도 모르는 탄력성과 생존권에 대한 훈계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통제 사회의 양식의 총체화하는, 탈주할 수 없는 범위를 상정하는 것은 통제의 작업을 수행한다. 통제가 어떻게 통제하고, 통제가 무엇을 통제하는지 과장하는 것, 또는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 인식되는 무언가를 낙천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집합적 처벌로부터 차등적인 이동성을 가로지르는 잠재적 연대로 주의를 돌리는 것이 이런 중요한 예 중 하나이다. 포착 너머/아래의 느린 삶은 운동, 고요함 그리고 시간의 삶을 (재)형성하는 신체적인 행동, 능력, 그리고 쇠약의 일상적 리듬과의 조우에 대한 껍질로서 풍부하게 사유될 수 있다. 즉, 느린 삶은 시간이 감금 자본주의의 행정기구와의 관련 속에서 어떻게 소모되는지에 대해 포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고 제작될 수 있는지 고려할 수 있는 잠재력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곳인 “얽힘의 다발(a mass of entanglements)”(Barad 2018)로서 어떻게 시간이 정동적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도 포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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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의 비디오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오픈 소스 갤러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참고하라. www.facebook.com/watch/live/?v=2212514832369678&ref=watch_permalink. [본문으로]
- 점령의 많은 시기 동안, 부상과 죽음의 관계는 명백히 전략적인 것이 되어 왔다 (Andoni and Tolan 2001; Barrow-Friedman 2016; Blumenthal 2014; Hass 2016; Helweg-Larsen et al. 2004; Reinhart 2002). 나는 다음의 인권 단체들로부터 불구화에 대한 아카이브를 그러모았다. 알-하크(Al-Haq), 국제 앰네스티, 인권을 위한 알-메잔(Al-Mezan) 센터, 국경 없는 의사회,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붉은 초승달 모양의 표장을 사용하는 이슬람권의 적십자사-역자 추가), UN, 팔레스타인 거주 및 난민 권리를 위한 바딜(BADIL) 자원 센터, 가자 공동체 정신 건강 프로그램, UN 구호 사업 기구, 팔레스타인 인권 정보 센터, 서안 지구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 건강권과 인권을 위한 하버드대 FXB 센터, 인권을 위한 의사회. 정치적 옹호와 인도주의적 자금 지원을 목표로 수십 년 동안 수집된 데이터는 너무 많아서, 아직 집합/종합되지 못했다. [본문으로]
- 나의 관찰은 2018년 여름 동안 서안 지구에서의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나는 아홉 개의 난민 캠프의 건강, 재활 그리고 장애 센터를 방문해 비정부 기구의 의료 실무자들 그리고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본문으로]
- 다양한 보도 기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적 사정평가, 비정부 기구의 보고서들 (Hardigan 2016), 장애를 가진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표적화에 대한 기록은 여전히 수집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있다. [본문으로]
- 서안 지구와 가자에서의 전반적으로 악화되어가는 팔레스타인인의 건강 조건을 탐구하는 의료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학술적 작업에 대해서는 Graff 1993, Qato 2004, and Qlalweh, Duraidi, and Bronnum-Hansen 2012를 보라. 이런 작업은 비장애-신체성(able-bodiedness)의 통상적 개념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면서 마찬가지로 진단명 혹은 정체성의 범주로서의 장애를 복잡하게 만드는 집단적 인구 쇠약화를 강조한다. [본문으로]
- 축소된 차이의 다른 예로서, 팔레스타인의 공중 보건 전문가는 정신병 진단을 받은 아이들의 비율이 수십 년 동안 폭등해 왔다고 주장한다.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보이는 동안, 이런 증상들은 의료화로 이어지는 외상의 고립된 사건들보다는 점령의 광범위한 외상경관(traumascape)에 내재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정신병의 과잉 진단―앞의 이유로 발생하는 피점령인들의 사회적 고통의 병리화―는 그렇게 점령의 정치적 문제를 가려버린다. 장애/비장애 이분법의 재분배를 통해 정착 식민주의의 효과를 다루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의학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인구를 개방하는 것은 점령된 인구가 경험하는 일반화된 쇠약화의 지형을 인도주의적이고 인권 기반의 관점에서 더 식별가능하고 더 “관리 가능한”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화로 붕괴시킨다(Rabaia, Saleh, and Giacaman 2014). [본문으로]
- Bethlehem Arab Society for Rehabilitation 2010; Bethlehem Arab Society for Rehabilitation, interview by the author, January 10 2016, Bethlehem, Palestine. [본문으로]
- 가속주의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가속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종말이 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힘 혹은 가속도로서의 자본주의의 고유한 가속은 결국엔 자기자신보다 빠르게 진행되며, 자신의 고유한 논리를 기만한다. 이 논리는 본질적으로 미래의 유토피아를 위해 현재의 정의를 매매하는, 즉 가속이 더 심해지면 나아질 것이라는 동종요법적이고 파르마콘적인 독이-곧-치료제 유형이다. 팔레스타인은 실제로 우리가 자본주의의 가속을 볼 수 있는 한 장소이지만, 이는 반드시 속도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자본주의와 나란히/자본주의의 내부에서 능력화를 가능하게 하는 제1 성질으로서의 속도의 유보를 통해서다. 속도의 반대라고 알려진 것으로서, 느림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최고조의 가속화에서 자본주의의 측면을 예시하기도 한다. 속도의 유보는 속도의 시간성에 대한 옥죄기 덕분에 자본주의의 착취적 능력을 심화한다. 관련해서, 가속주의자들의 상상계 속에서, 잔존한 가속의 불균등함은 사유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 넓은 전지구적 선을 위한 희생의 장소로서 팔레스타인의 파문은 그저 빠름, 속도, 지속의 끊임없는 뒤섞임의 실험실로 “어딘가에” 종종 배치되는 극단적 착취의 필요성을 재진술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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