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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포스트-페페 선언문 (허성영)

아마도 독자 2022. 12. 7. 19:40
이는 『포스트-밈: 생산의 밈들을 장악하기 Post Memes: Seizing the Memes of Production』에 실린 허성영의 글「The Post-Pepe Manifesto」를 번역한 것이다.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표절은 불가피하다. 진보는 표절을 암시한다.

 오래된 밈이 현재를 위한 자원이 되기 위해서는 오래된 밈의 재발명과 재사용사유 재산의 도용이 아닌 집단적 상속의 전용이 요구된다. 똥글러(shitposter)들의 문화적 전위대는 분열증적이기보다는 자폐적인 넷의 단명하는 지식을 가지고 밈적(memetic) 커먼즈를 표현한다. 우리는 열심이고 과자 부스러기 묻은 손가락이 다다이스트와 상황주의자들이 결코 할 수 없었던 것을 끝마치는 데 착수하기 훨씬 이전에 예술을 개념으로 대우하는 것이 관습상 요구되었다는(de rigueur) 뜻으로 말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현란한 리좀을 뒤로하고, 최첨단의 것은 인터넷의 포스트-포스트모던으로의 전환의 선봉에 서고 있다.

 밈의 재발명과 재사용의 이런 유형을 위한 우리의 이름은 우회, 납치, 길 잃음, 전용과 같은 데투르느망(détournement)이다. 이것은 똥글로서의 똥글이 아니다. 과업은 밈의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보수적인 규범주의(prescriptivism)ImgurReddit에서 빽빽대며 말하는 너는 그 밈을 잘못 사용하고 있어!”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현현하는 밈의 소유권의 파괴다. 이 구역에서 사유재산이라는 바로 그 관념의 제거는 아이러니한 밈을 한때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밈은 오직 그 자신에게만 진실했다.

 하지만 사커맘 가필드와 미국 시골의 예수 포스팅만 뒤로 남겨둔 채로 노미(normie)들이 다시 한 번 찾아왔고, “아이러니한 밈은 뉴 노멀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러니한 밈은 브랜드화되고, 인스타그램과 연계되어 워터마크가 찍히고, 이모지로 장식되었다. 아니, 그랬나? 그렇게 된 걸까?

[역자 설명-노미(normie)는 사전적으로는 일반인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싸를 죽여라』의 역자 김내훈이 옮긴이의 말에서 서술했듯이, 노미라는 말에는 소수의 ‘너드’‘긱’‘덕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층위도 존재한다. 이런 측면에서 노미는 일종의 ‘인싸’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의 몇몇 부분에서도 노미는 ‘소수의 너드들에게 통용되던 밈을 훔쳐간 사람들’이라는 의미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노미를 굳이 인싸라고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노미의 놈(norm)이 규범을 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저자는 이 선언문에서 밈의 용법이 정해져있다고 믿는 ‘보수적인 규범주의자’들, 더 나아가 밈이 주류로 진출할 때 더욱더 굳게 ‘레어(희귀)’한 밈을 거래하고 그것도 안 통하면 밈의 죽음까지 선포하는 밈 씬의 엘리트주의자들을 겨냥해서도 노미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노미를 ‘인싸’나 ‘일반인’으로 통일해서 번역하기 보다는, 중의적 의미를 염두에 두며 그냥 음역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2014년의 위대한 밈 전쟁(the Great Meme War)을 기억한다. KnowYourMeme의 역사책은 톡 쏘는(spicy) 밈의 이름으로 페이스북의 삭제를 견뎌냈던 수많은 전사자들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중에는 역사적 두음법페이지들의 첫 번째 물결이 있었다. 관리자들이 팔로워를 규합해서 9/11 밈을 포스팅한 다른 페이지들을 대량 신고하게 하거나 출처 표기 없이 리포스팅한 서로에 대한 신상털기를 하게 한 것은 노미(normie)가 아니었다.

[역자 설명-‘역사적 두음법(Historical Alliteration)’ 밈 페이지는 2014년에 페이스북에 난립한 페이지들의 유형 중 하나이다. ‘두음법’이란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밈 페이지들의 이름은 ‘형용사+국가 이름+memes'으로 구성되고, 형용사는 국가 이름의 앞글자와 동일한 단어로 선택된다. 예를 들어, Greasy Greek Memes와 Jammin' Japanes Memes와 같이 말이다. 페이지의 난립은 경쟁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많은 페이지들이 경쟁에 참여한 페이지들을 추종하는 팔로워들에 의해 신고되고, 삭제되었다. 참고는 https://wiki.bibanon.org/Facebook/Groups#Early_2014:_The_Golden_Age_of_Historical_Alliteration_Memepages_and_the_Great_Meme_War]

 노미(normie)들이 우리의 밈을 훔쳐갔던 걸까? 아니면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 4chan이 그 10월에 페페-시장 은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설명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우리가 생산과 유통을 중단하게 되면서 사용과 의미에 대한 헤게모니를 포기하고, 우리로 하여금 페페를 노미(normie)들에게 넘겨주도록 이끌었던 것은 우리의 인터넷-힙스터와 페페-자본주의적 가치평가밈을 레어하게 유지하고 밈을 우리가 계속 소유하자, 레어하지 않다면 쩌는(dank) 것도 아니다였다. 우리가 노미(normie)들이었던 걸까?

 [역자 설명-2014년, 래퍼 니키 미나즈와 가수 케이티 페리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개구리 페페 밈을 공유하면서 개구리 페페 밈은 노미(인싸)들까지로, 메인스트림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을 참을 수 없었던 4chan 유저들은 2014년 10월에 농담조로 “레어한 페페-도용 금지”라는 워터마크가 붙은 페페 밈을 포스팅하기 시작했고, ‘레어’한 페페는 이베이 등지에서 거래되는 것까지에 이르게 된다. 맥락을 위해서는 이 글들을 참고. <4chan의 개구리 밈은 메인스트림으로 갔고, 그래서 그들은 밈을 죽이고 싶어한다>https://www.vice.com/en/article/vvbjbx/4chans-frog-meme-went-mainstream-so-they-tried-to-kill-it <페페와 비트코인은 둘 다 그들을 둘러싼 시스템과 극명한 반대로 위조된 가치 체계를 가진다> https://bitcoinmagazine.com/culture/pepe]

 노미(normie)들은 그들이 소유한 이미지 속에서의 문화, 사유재산으로서의 밈 문화, 천재의 작업의 자영업자로서의 작가를 생산한다. 데투르느망은 밈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문화의 밈적 잔해물들을 샅샅이 살핀다. 이 잔해물들이 가지는 반시대성(untimeliness)은 노미(normie) 문화에 대항하여 활용될 수 있다. 데투르느망은 우리를 오랫동안 지루하게 했던 노미(normie) 콘텐츠를 훨씬 능가, 다양성, 그리고 질에 있어서하는 생산의 용이성을 제공한다. 데투르느망은 노미(normie) 밈학을 상세히 설명하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한다.

 우리의 목표는 노미(normie)의 생산의 진정한 용도 변경을 통한 약탈적 밈 페이지 문화의 전복이다. 우리는 의미가 사용의 결과이며,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리고 모든 것을 사용하기 위해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밈 씬은 메타-아이러니의 지옥불을 견뎌내고 있다. 메타 아이러니가 가진 변형의 시커먼 불길은 진실되지 못한 놀이의 냉소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여전히 유지하는, 확실히 아이러니하지 않게 되어가고 있는 아이러니한 밈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모든 밈을 뒤집고 폭파시킨다. 우리는 이제 과거를 무기화하면서, 포스트-아이러니 밈의 알려진 순진함으로 진격한다. 그 모든 아이러니한 실험들의 결실이 우리의 에토스(기질, ethos)에 영향을 미치는 동안, 우리는 방구석 늙은이(oldfag,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또 그에 대해 나대는 사람을 말한다-역자 추가)로부터 진실됨의 파토스(정념, pathos)를 상속받는다. 실물로서의 밈에 대한 아이러니하지 않은 가치평가는 우리의 새로운 로고스(이성, logos)의 원천이다. 노미(normie)들이 외부로 전이하고 웹을 그들의 이미지로 가득하게 만들면서, 페이스북의 거처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했던 이미지가 자신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문화는 파생상품이다.

혁명은 리포스트될 것이다.